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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Dec 26. 2022

엄마의 두 번째 전화

 요즘 엄마가 기억을 자꾸 잃는다. 잃거나, 아예 뒤죽박죽이 되거나. 난 그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엄마한테 곧잘 화내곤 하는데, 엄만 그마저도 잊어서 바로 몇 시간 뒤에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 같은 말을 한다.

 

 창밖에 눈이 내린다. 그러나 다행히도 쌓이는 눈은 아니라서 나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본다. 가볍게 포슬포슬 내리는 눈이라, 아주 옅은 바람에도 떠밀려 천천히 내리다가 또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꼭 중력이 없는 것처럼. 그걸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나도 붕 떠버리는 것 같다. 꼭 시간이란 개념이 없는 곳에 와있는 것처럼. 저 눈이 꼭 엄마의 기억을 닮았다.


 요양원에서는 엄마의 기억이 점점 엉클어지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했다. 뇌를 다친 채 20년을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는데, 이제 와서 기억이 들쑥날쑥한 게 이상할 것도 없다고. 그냥 자연스러운 거라고.


 엄마에게 시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늘 풍경이 같은 창밖을 보고,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게 전부인 시간. 엄마의 시간은 남들처럼 흐르지도 중첩되지도 않는다. 눈처럼, 매시간이 그렇게 흩어지고 공기 중으로 수렴될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하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또- 기억하는 누군가들을 위한 엄마의 기도는 엄마의 몸처럼 고정된 채 움츠러들고 있지 않다. 그것은 크게, 더 크게 멀리 퍼져나가 엄마의 소망이 있는 곳으로- 가 닿을 것이라 생각한다.


 때론 나의 삶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과 똑같이 사람들과 웃으며 점심을 먹고 일하고, 여행을 가고 연애하고······. 내가 엄마를 내버려 두고 이래도 되나 싶은 때가 있다. 때로 나는 엄마를 잊는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오기 전엔 주말에 꼬박 세네 시간씩 엄마 곁에 있었는데. 코로나 시국 동안 길게는 몇 개월간 면회가 금지되었다. 그런 때에 난 분명히 엄마를 잊고 지냈다. 


엄마의 인생과, 그리고 남들과 달리 느리게 흘러가는 그녀의 시간을 생각하면 회칼로 마음을 저미는 것 같지만, 난 그럴수록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엄만, 내가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엄마가 완전히 기억을 잃는다 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 막, 엄마에게서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역시나 내가 화냈던 걸 잊었다. 나는 이번엔 엄마에게 화내지 않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랬냐고. 나도 고맙다고, 나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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