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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Dec 29. 2022

몽실이의 견생

 사람에게 팔자라는 게 있듯이 개한테도 팔자가 있다. 우리 몽실이를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몽실이 팔자도 참, 하게 되는 거다.


 다른 예능은 안 봐도 '개훌륭'은 꼭 챙겨서 본다. 강형욱 훈련사는 개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그의 훈련과정을 보고 있으면 경외 비슷한 감정마저 느껴지는 거다.


하늘아래 같은 개와 보호자는 없으므로,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가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강 훈련사는 다소 억압 적여 보이는 태도를 취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와 인간이 만나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언어가 충돌하는 일.


물론, 모든 개는 훌륭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복잡 다양한 인간사를 이해할까. 어르는 것과 제지가 반복되는 강 훈련사의 손길에서 개들은 자유를 찾는다. 개들에게 원칙과 질서를 정해주고 알려줌으로써 불필요한 짖음에서 자유해지고, 보호자가 떠났을지도 몰라 부르짖는 하울링에서 자유해진다.


선한 속박을 통해, 또 다른 무거운 속박에서 자유해지는 것. 그것이 강형욱 훈련방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개는 훌륭하다'를 보고 있으면 이제는 세상을 떠났을 우리 몽실이가 떠오른다.


나는 좋은 견주가 아니었다.


몽실이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2살의 나이로 우리 집에 왔다. 말티츄였던 몽실이는 전체적으로 하야면서 몸집이 크고 동그란 눈, 삐뚤빼뚤한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첫인상이 매우 지저분했다.


몽실이는 나를 언니라고 불렀지만 사실 개 나이로 환산해보면 내가 언니였던 적은 없었다. 내가 11세일 때 걘 이미 24살이었으니 말이다. 몽실이는 삼촌 집에서 쫓겨난 개였다. 삼촌이 동거하던 여자와 함께 키우던 개였는데 그 여자가 어느 날, 삼촌 집에 개만 놔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삼촌은 배를 타는 사람이었으니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몽실이는 자주 밥을 굶어야 했다. 왜 난 여기에 갇혀 아무것도 얻어먹지도 못하고. 그리고 그건 또 언제까지. 내 반려인은 어디로 간 건지. 몽실이는 울분이 치밀어 곰인형을 다 물어뜯어서 해체시켜놓고 화장실에 쌓인 똥휴지를 물고 나와서 널어놓고 소파를 갉아먹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누나야. 내 집에 개 한 마리 있다. 그거 가갈래? 가스나 그래 나가고, 개새끼땀에 마 집이 개파이다 마. 그기 봐줄 사람이 없어가 개판이기는 한데. 원래 그기 착한 개라.


 몽실이가 집에 오던 날이 생생하다.

절. 대. 개만큼은 못 키우게 했던 엄마가, 그 개는 처음 본 순간 내 개다 싶었다나. 눈이 마주쳤는데 안쓰러워서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단다. 사람에게 인연이 있듯이 개에게도 연이 있는 게 틀림없다.


 한 번은 여행을 갔는데 아빠와 엄마가 크게 싸웠다. 엄마가 고속도로에서 내려달라고 하니, 아빠는 정말 엄마를 내려주겠다고 차를 세웠고- 엄마는 몽실이만 챙겨서 나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털웃음이 난다.


 우린 몽실이를 사랑하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이스한 견주들은 아니었다. 그게 벌써 25년도 넘은 일이니. 당시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와 정보가 많지 않았다. 밥은 좋은 것으로 먹이고 잘 씻기긴 했지만, 산책은 일주일에 한 번도 겨우 시켰고 잘 놀아주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으르렁 캉캉 하며 수건을 물고 늘어졌던 게 터그놀이였는데, 우리는 몽실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했다. 우리는 그저 그 개가 따뜻한 곳에서 끼니 거르지 않고 사니 부유한 개라고만 생각했다. 몽실이는 정말로 착한 개라, 별 말이 없었다.


몽실이는 우리 집에서 8년을 살았다. 딱히 아픈 곳도 없었고, 새끼를 낳았다거나 남자친구를 만났다던가 하는 특별한 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어쩌면 덩그러니 놓여 8년을 지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온 지 9년 차가 되던 해에 엄마를 살렸다.


2004년 모두가 잠든 시간인 새벽 5시, 몽실이가 너무 많이 는 통에 아빠와 내가 어났다. 몽실이는 도통 짖는 개가 아니었는데 집 안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짖으며 화장실문을 긁어댔다. 문에 귀를 대어보니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이상한 상황이라 나는 멍하니 아빠를 돌아봤다. 아빠가 잠겨있는 화장실 문을 강제로 열어 들여다보니, 엄마가 쓰러져 쌍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술을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괴괴한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아빠는 정신도 없는 사람에게 물을 먹이려 들었다. 오히려 엄마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고, 나는 물을 그만 좀 부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구급차에 실려가고 혼자 집에 남았을 때, 나는 몽실이를 안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몽실이가 가장 사랑한 엄마였는데, 그때 몽실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뇌에 꽈리모양의 기형 혈관을 가지고 있다가 터져버렸고, 간호사가 석션을 하다가 기도 어딘가에서 아기 주먹만 한 몽실이의 털뭉치를 발견했다.




병원에서 며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외할머니가 와있었다. 병원으로 옮길 엄마의 짐을 싸고 있었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지다시피 잠들었다.




 

 집에 몽실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건 만 하루도 더 지나서였다. 이렇게 오래 몰랐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감정을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 몽실이를 이방 저 방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외할머니에게 전화해 할머니, 몽실이는?? 하고 물었다.


할머니가 얼른 대답이 없어서 나는 더욱 채근하며 물었다.


 할머니, 몽실이는! 응? 삼촌이 다시 데려갔어?


 보냈다. 털 날리고 그거. 네 엄마 목에서 털나 온 거 몬 봤나? 니그 아버지까지 쓰러지게 할래?


 삼촌한테 보냈냐고.


 전화를 끊고 머리를 쥐어감쌌다.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식구에게 개와의 인연은 없다며, 지인 중에 시골에 계신 분이 있어 그쪽으로 몽실이를 보냈다고 했다. 엄마의 기도에서 나온 개털 뭉텅이가 할머니에겐 충격이었다. 엄마가 쓰러진 직접적인 사인은 그게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몽실이는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데. 산책도 많이 못 시켜줬고, 앞으로는 더 몽실이에게 신경 쓰기 힘들 텐데. 기약 없이 또다시 집에 홀로 남아 이것저것 물어뜯으며 사느니, 간 곳이 땅 넓고 공기도 좋으니 밥만 잘 먹으면 우리 집보다 낫겠다. 가서 풀냄새도 맡고 흙냄새도 맡고 바람냄새 비냄새, 친구도 사귀고. 그래.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얼마 후- 엄마와 관련된 일이 정리될 때쯤. 나는 할머니에게 몽실이가 간 곳의 정확한 주소를 물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으니 이렇게 마음이 힘들 때, 아니면 기쁜 일을 안고서- 몽실이를 찾아가면 되니까.


그러나 할머니는, 이전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 김해에 있는 분이네로 갔다고 했다가 강릉에 있는 신희네로 갔다고 했다가, 이제는- 자기도 어디로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또다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를 더 채근하고 싶었지만 딸이 쓰러져 상심이 큰 할머니를 더 괴롭힐 수 없었다. 당시엔 그랬다. 그리고 그건, 잘못된 행동이었다.


 나는 몽실이가 아직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엄마가 아직 살아있는 건- 물론 신의 영역이지만 그 과정에 몽실이가 있었다. 몽실이가 짖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나는, 우리 몽실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몽실이에게 이 문장만큼 슬픈 게 또 있을까.





 이후로 나는 개를 키운 일이 없다. 나에겐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 있다. 그게 나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나는 더 강력하게 그 개를 찾았어야 했다. 그걸 모르고 몽실이와 가족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개는 집에 데려온 순간, 식구가 된다. 경우에 따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항시 그렇다. 그들이 먼저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진은 몽실이가 아니라 몽실이와 매우 닮은 친구 집 강아지 '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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