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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Jan 04. 2023

은사의 부재

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얼마 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친구였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남들한테는 다 있는데 나에게만 없다고 생각 드는 것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형제, 그리고 '은사'이다.


은사가 없어서 불편하냐면- 뭐 그렇진 않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스승의 날을 기념해 동창들과 선생님을 뫼시고 식사하러 간다. 선물 고른다. 하면, 어쩐지 모르게 쓸쓸해져, 내가 혹시 잘못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내 학창 시절은 여러 면에서 얼룩져있었다. 물론 그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나.' 나 자신 때문이었다.


난 정말이지 공부를 드릅게 못했다. 공부 안 한 것에 후회하냐면, 후회랄 것까진 아니지만 당시 주어진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찔린달까.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상상해 보지만,  


상상은 웬만해선 비실비실하니까.


나를 좋아해 주었던 유일한 선생이 있었는데 초3 담임이었다. 선생은 날 보며 늘 해사하게 웃어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엄마가 정기적으로 갖다 바치던 '촌지' 덕이었다. 당시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사하고 그 선생을 다신 못 보게 되면서 그녀를 그리워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좋아한 건 내가 아니라 돈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공부만 못했으면. 사람이 공부를 못할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성실하지도 않았다.


매번 지각해 교문에서 학생주임선생에게 발바닥 맞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으니. 출근할 때부터 이미 기분을 망쳤다. 내 기분만 별롤까. 애들 혼내는 선생들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다 보니, 결코 선생들과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엄하다고 소문난 여선생이 담임이었다. 그 선생은 너무 예민했고, 날카로웠고, 그래서 그런지 얼마나 볼품없이도 말랐던지. 어찌나 검소한지 시대에 뒤처진 정장에서 케케묵은 좀약냄새가 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 선생은 내가 하도 지각을 하니까 어느 날은 화장실 청소용구함에 가두었다. 그렇게 혼이 나면서도 담임의 눈썹모양이 웃겨서 그걸 보며 베실베실 웃고 있었다.






문제는 고3 때였는데 담임이 국어였다. 당시의 나는 선생들이나 학교 친구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심 국어만큼은 존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품위 있게 구불거리는 짧은 머리카락과 커다란 진주귀걸이, 느리고 고상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늘 비비드한 컬러의 말끔한 치마정장. 화장끼 없는 피부에서 윤이나던 그녀는 중견 여배우와 같은 품격이 있었다. 그녀의 수업시간, 적당한 하이톤의 차분한 목소리가 시 한 편을 읽을 때에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런 그녀가 고3 담임이 되어준 것이었다.


그때도 책 읽는 건 좋아했으니(책 좋아하는 애 치고 공부 못하는 애는 없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유일하게 잘해보고 싶었던 과목이 국어였고-


* 국어의 딸은 우리 학교에 재학하면서 전교 1-2등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였다. 그 애는 나중에 전교를 넘어서 전국에서도 상위권이 되었다. 그 애는 엄마와 외모는 닮지 않아서 그리 예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도, 성품이 차분하고 참 좋았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늘 의문이었던 점이 있는데 성적이 상위권아이들은 어째서- 누군가의 억압 없이도 학업에 충실할 수 있는지, 스스로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국어의 딸도 그랬다. 국어가 결코 자녀를 억압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잔소리가 많은 타입도 아니었으니. 한마디로 아이를 잘 키운 거구나 싶었다.






대학 진학 상담할 당시, 국어는 나를 불러 물었다. "넌 무슨 과에 가고 싶니?"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국어국문이요."라고 대답했고, 그 말을 들은 국어는 엷은 코웃음을 쳤다.


 무슨 말이야. 네 성적으론 택도 없어. 더군다나 넌 쭉 미술학원엘 다니고 있잖아. 미대로 가.


지금 생각해도 참 순진했던 것이, 내게 무슨 과엘 가고 싶냐고 묻는 담임의 말에, 가하고 불가한 것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정말로 가고 싶은 과를 말했던 것이다. 코웃음이 나올 만도 하지.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학교 옆 서점에 들러 모의고사 문제집을 다섯 권도 넘게 샀다.


그 해에 엄마가 쓰러졌다. 3학년이 된 지 한 달도 채 안된 때였다. 상황을 수습(어린 내가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쓰러져있는 엄마의 베드를 따라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수술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졸래졸래 따라다닐 뿐이었다.) 하고 나니 벌써 수개월이 흘러가 있었다. 학교에 가지도 못하면서 병원에 교복을 입고 드나들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온통 병원 약물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동안 국어는, 내게 전화 한 통 없었다.


무기력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벽을 보고 누워있는데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연락이 안돼 걱정 돼서 왔다면서.


 야, 근데 하나 너 큰일 났어. 너네 담임이 전교 수업 돌아다니면서 너네 엄마 쓰러지신 거 다 소문내고 다니고 있어. "우리 반 최하나 알지? 그래 그 문제아. 걔네 엄마 뇌출혈로 쓰러졌잖니. 늬들도 공부 열심히 해야지. 공부도 안 하고 부모 속 썩이면 그렇게 된다?"


친구들이 국어 특유의 그 고상한 목소리와 표정을 흉내 내며 말했다. 순간적으로 1반에, 내가 남몰래 좋아하고 있던 동섭이 얼굴이 떠올랐다. 창피함이 밀려와 눈을 질끈 감았는데 친구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깔깔대느라 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친구들이 돌아간  책가방을 옷장 깊숙한 곳에 넣고 다시 잠들었다. 이후 쭉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 학기 초 짝꿍이었던 유미가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얼굴이 유난히 길고 하얀 애였다.


 하나 너 이렇게 생겼었구나. 나 네 얼굴이 기억이 안 났어서······.


 담임은 마지막 진학상담을 위해, 다시 아이들을 하나씩 교무실로 불렀다. 내가 곁으로 다가갔을 때 그녀는 서류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는데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 원래 무단결석으로 대학 못 가는 거 알지? 어떻게 할 거니.


 ······.


 이거- 내가 병결 처리해 줄게. 그럼 갈 수 있겠니? 집안이 어떤 지경이든. 어쨌든 대학은 가야 될 것 아니니. 붙으면 덕분인 줄 알고. 가 봐.


할 말은- 못 할 말 빼고 다 하고 사는 지금 같은 성격이면 '맞아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한몫하신 건 기억 안 나세요? 내심 잘됐다고 생각하신 거잖아요. 기분 나쁘고 쪽팔려서 못 왔다고요. 전 그걸 견딜 만큼 아직 강하지 않아요.' 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의 나는 분노가 일지 않았다. 그저 무기력한 상태였다. 이런 이야길 하면 오히려 나보다 친구들이 치를 떨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20년 교사 경력이면 그때까지 적어도 600명의 아이들이 거쳐 간 후, 나를 만났을 테니까. 난 그중의 한명일뿐이다.


 나는 대학을 다닐 때에도 사회에 나와서도 꽤 오랜 시간 미술학원 선생으로 일했다. 애들이 이뻤냐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10대라는 나이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이상한 생명체였고 그래서 때론, 그들이 하는 무모하고도 정제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 무서웠다. 그러한 아이들을 다스리고 가르치고 깨닫게 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 그런 것이 현실에서는 쉽지 않았다.


대략 나를 거친 아이들이 200명쯤 되는데, 나 또한- 누구의 은사도 되지 못했다.






 얼마 전에 전화한 통을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잊을만하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친구였다.


 너 그거 들었어?

 

 뭐든 내가 들었을 리가 있니? 너밖에 없는데.


 고3 때 너네 담임. 국어 말이야. 학교 그만뒀데. 갑자기 귀가 안 들려서. 아예 안 들린다나 봐. 완전히 먹통. 막 딴 반 돌아다니면서 니 얘기하고 그랬잖아. 벌받았나 봐.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기분 이상하게. 나한테 그래서 그렇게 됐다는 것처럼 들려.


 너한테만 그랬을 것 같아? 니가 몰라서 그렇지 장난 아니었어.


 그럼 벙어리가 돼야지. 왜 귀가 막혀.


 바보. 들리는 게 있어야 말을 할 거 아냐.


                                                   a portrait of the teacher                        


a portrait of the 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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