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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Jan 19. 2023

당신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나요.

이것은 페브리즈 광고가 아닙니다.




박 차장이 본격적으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 건 3개월 전 즈음부터였다.


그러나 그런 낌새를 풍기기 시작한 건 벌써 2년도 넘은 2020년 겨울부터였는데 그날은 박 차장, 용 부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점심을 먹은 날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 용 부장이 자기보다 앞서 걸어가는 박 차장에게 말했다.


 박 차장, 그 패딩 작년 겨울에 나랑 같이 산 거 아냐. 그때 입고 드라이 안 했구나? 드라이했으면 모자에 붙은 폭스 털이 그렇게 살아있을 리가 없는데.


 예. 맞아요. 세탁 안 하고 그냥 잘 걸어놨다가 다시 입었어요.


1년 전에 입던 옷을 세탁도 안 하고 다시 입었다니 좀 놀라긴 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업무가 미친 듯이 쏟아지던 때였으므로 박 차장의 여우 털 따위를 신경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패딩 세탁은 20년 겨울, 21년 겨울, 22년 겨울에도 다음 봄으로 미루어졌고. 폭스 털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땐 몰랐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던 그에게서 2023년 1월 현재, 이렇게까지 꼬랑내가 날줄은.






사람한테서 자꾸 냄새가 난다고 말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박 차장 냄새는 골이 댕댕 울릴 정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 미안해야 될 사람은 박 차장이 아닌가.


어느 날 오랜만에 우리 사무실로 외근 온 직원을, 박 차장이 반가운 마음이랍시고 격하게 껴안았을 때- 나는 그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숨을 참아버렸다.


박 차장의 냄새에는 우리의 코를 쥐어 짜게 만드는 것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정 과장이


 차장 님, 어제저녁에 부자곱창 갔다 왔어요?


 엇, 대. 박. 어떻게 알았어요?


 냄새가 딱 부자곱창인데 뭐.


했을 때. 그가 어느 식당엘 왔다리 갔다리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니 이것이야말로 인간 네비가 아닌가. 박 차장은 어디 가서 나쁜 짓도 못할 거다.


먹은 음식냄새뿐만이 아니라 땀냄새, 입냄새, 발냄새, 머리냄새, 마디마디 습기 찬 냄새까지. 나는 그와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데 그의 향기가 이쪽으로 스멀스멀 넘어오는 오후엔- 이 추운 겨울에 창문을 열어야 하는 내 심정을 알까. 히터까지 틀어야 하는 요즘엔.


활자에서도 그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한 날은 참다못한 서 과장이 박 차장에게 한 소리 했다. 파티션이라는 보호막도 없이 박 차장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는 서 과장은 유난히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 도저히 안되었던지 서 과장이 박 차장에게 다가가 대놓고 코를 킁킁댔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냄새가 나는 거예요. 냄새가 너무 심해. 박 차장 님은 본인 냄새라 모르는 거예요?


 왜요. 뭐요. 무슨 냄새요.


 아- 너. 무. 심해. 나 정말 머리가 너무 아파 미치겠어. 제발.


정말 화가 났는지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어 뱉는 서 과장. 우리들은 박 차장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는 안 했어도 남몰래 한 마음이었는지, 서 과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박 차장님, 거 뭐냐, 샴푸 하나 추천드릴까요? 이거는 향기가 거의 향수급이에요. 엄청 진해. 제가 바로 지금 링크 하나 보내드릴게요.


 아 박 차장 님, 세탁 세제 뭐 쓰세요? 저는 빨래처돌이라 매일 빨래 돌리고 세제도 이것저것 다 써봤는데 다 필요 없고 퍼실이 짱이예요. 그늘에서 말려도 옷에서 냄새 안 나요.


 저는 바디워시 하나 키프티콘으로 보내드릴게요. 얼마 전에 생일이셨잖아요.


정말이지 작년 여름 야유회 이후 이렇게 담합이 잘 되는 걸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박 차장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이건 직장 내 괴롭힘이에요. 후잉.


하더니 예의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여우 털을 휘날리며······.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친구 정은이 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더니 내게 이런 의견을 제시했다.


 박 차장 옆에 페브리즈 하나 비치해 놔.


 야. 페브리즈 가지고 될 사안이 아니라니까. 섬유 조직 한 땀 한 땀에 밴 냄새야.


 아니. 그 여리여리한 하늘색 페브리즈 말고. '포 맨'이라는 게 있어. 시커먼 색. 딱 봐도 센 거. 바퀴벌레도 잡게 생긴 그거.


정은은 지역에서 관할하는 아동센터에서 근무했다.


최근 기존에 일하던 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 이런 말을 하기는 뭐 하지만 센터 내에 전과 달리 발꼬랑내가 진동을 했단다.


당시 폭우로 서울 전역이 물난리가 났던 때였다. 푹 젖은 운동화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발을 욱여넣고 태권도도 가고 미술도 가고 놀이터도 가고 그러다 보니 발 냄새 또한 쉴 틈이 없었다. 문제는 그러한 꼬린내가 계절이 지나도 계속되었다는 거였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여러 종류의 냄새를 가지고 와서 풍겼다.


정은은 페브리즈 포 맨으로 아이들의 운동화를 적셔 그 덕을 톡톡히 보았지만 근원적인 문제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은은 어느 화창한 오후 아이들을 한데 둥글게 모았다.


 너네. 전부 여기 아빠다리하고 앉아. 자, 발 잡아. 코 갖다 대.


발냄새의 주인공 몇몇이 자기 발 냄새를 맡고도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으나 코끝이 짜릿해지는 냄새에 아이들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닌 척해도 소용없어. 나 지금 움찔거리는 몇 명 봤다. 발고락 사이사이 손가락 넣어서 빡빡 씻어라. 다음부턴 친구 발 잡는다.


나는 커피숍에서 정은의 움찔거리는 흉내를 보며 한정 없이 웃어댔고 정은은 박장대소하는 내가 웃겨서 테이블을 치며 웃었다.


아이들이 잘 씻지 않게 된 이유는 맞벌이 부모들이 많아 신경을 못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세대 주택이 대다수인 지역이다 보니. 겨울철엔 화장실이 너무 추워 아이들이 씻기를 꺼려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빨간 벽돌집들 사이에서 불을 밝힌, 정은의 센터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박 차장이 출근한 날, 옷에 냄새가 가장 많이 배는 부대찌개 집에 가서 점심을 먹은 후- 검은색 페브리즈를 구매해 사무실로 올라갔다. 박 차장이 서류들을 뒤적이며 앉아있었다.


나는 사무실 문 앞에 잠깐 서서 침을 삼키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마치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제된 동작으로 챡챡. 몸에 페브리즈를 뿌리고 무심하게, 그의 옆 책상에 툭. 페브리즈를 두었다. 박 차장 또한 내 동작을, 페브리즈를 말없이 번갈아가며 노려 보았는데 그걸 사용하지는 않았다.






박 차장은 회사에 잘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영업사원이래도 엄밀히 정해진 출근시간이 있음에도 불구,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새해가 밝고 나서 두세 번 봤나. 최근 1년 동안은 스무 번도 채 못 본 것 같다.


박 차장은 우리 회사에서 15년을 근무했다. 박 차장의 과거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참 이상해. 사람 왜 저렇게 된 건지. 원래 얼마나 밝고 촉망받던 인재였는데." 했다.


밝은 인재였을 시절, 나는 이 회사에 없었으므로 도무지 그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냄새만 풍기는 박 차장이 잘생기고 일까지 잘하는 인재상이었다니. 그동안 박 차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실제로 박 차장이 일하는 모습은 평소보다 사뭇 진지하고 달랐다. 꼼꼼하고 날카롭고 깐깐해서 또한 오랜 기간 동안의 자료와 노하우가 왼쪽 뇌 안에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그가 회사에 나타나면 몇몇 후배들이 질문거리를 들고 줄을 서기도 했다.


 박 차장은 마음이 아픈 거예요. 마음이.


회사엘 그렇게 안 나오는데도 권고사직 당하지 않다니 무슨 그런 회사가 다 있냐고 하겠지만 대표 이하 모두가 그를 안쓰럽게 여겼다.






1월 첫째 주, 타 지역 지사에 출장을 갔을 때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다. 20여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업무와 관련한 내용을 교육 중이던 나는, 코를 땅에 박고 있는 직원들 때문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점심 직후라, 많이들 졸리시죠. 10분만 쉬었다 할게요.


강의실 테라스에서 직원들이 모여 담배를 피웠다. 나는 그 사이에 껴서 그들에게 말했다.


 이쪽 지사가 엄청 에너지틱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 기억이 잘못됐나 봐요. 아니면 제 교육이 너무 지루한가요?


그들은 내 말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담배를 다시 물고, 괜히 서로를 쳐다보고 했다. 말없이 연기를 내뿜던 팀장이 대리에게 말했다.


 이 대리, 그냥 말해.


 말해요······? 저기 하나 씨, 본사 가서 이런 이야긴 마시고요. 사실 저희 쪽에 약간 문제가 있어요.


 뭔데요.



12월 말일. 해당 지사에 입사한 지 겨우 1년 된 사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도 두 어번 함께 식사해서 면이 있던 친구였다. 이후 그의 책상무심히 꽂혀있던 메모장에서 그간 빚 문제, 가족 문제 등으로 힘들었던 개인사가 적힌 것이 발견되었으나 동료들에겐 금시초문의 내용이었다. 누가 보아도 훤칠하고, 밝았고 실적도 좋아 누구도 그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쪽 팀장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자살방지 연합에서 종종 활동해 오던 사람이었으니, 그 충격과 낙심은 더욱 컸다.


이 대리에게서 내용을 들은 나는 괜히 신발 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고, 테라스 난간 끝으로 다가가 먼 곳에 있는 건물을 한참 동안 보았다.  






주말에 박 차장이 내심 걱정돼 전화했을 때 그는 예상보다 내 전화를 달갑게 받았다.


 차장 님. 대체 맨날 집에서 뭐 해요. 안 힘들어요?


 무슨. 나 나름 일 해요.


 뭔 일. (마음속 소리)


 나, 요즘 정말 아파요. 뇌에 문제가 좀 생겼데. 어머님은 좀 많이 우시고. 조만간 본가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난 왜 이럴까요. 아직 늙은 것도 아닌데 몸이나 자꾸 아프고. 신경안정제 처방해 줘서 반 알 먹고 잠드는데, 그거 아니면 요즘 잠도 잘 안 와. 전주든, 발리든, 제주도든 호주든- 어디 가서 한 달 살이나 해볼까 생각 중이야.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예전엔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선교도 꽤 했었고. 요즘은 정말이지 나답지 않아. 오랜만에 그림을 좀 그려보려고. 실력이 예전 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좀 그려. 우리 과에 나만큼 오일바를 잘 다루는 사람은 없었거든. 


그는 자존감이 심하게 떨어진 인격과, 자의식이 충만한 자신과의 긴 거리를 왔다리 갔다리하며 통상적인 화법에서 벗어난 소리를 늘어놓았다. 뜬금없이 감상이 풍부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원래 감상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그날은 내게 꽤 오래 신세한탄을 했다. 뭔가 좀 따뜻한 말로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나 또한- 위로받은 경험이 부족해 좋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신세한탄 좀 그만해요. 아니 무슨 그런 별 것도 아닌 일로 몸져누워요. 박 차보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박 차는 집 있지 차있지. 난 아직도 대출로 전세 살아요. 내 앞에서 그게 할 소리임? 뇌에 이상이 있는데 신경안정제는 왜 먹습니까. 정신이 아프다는 거예요 기능상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좀 알아듣게 얘기할 수 없어요? 어디 진단서 한 번 봐바요.


 아이, 또 잔소리. 그럴 거면 끊어요.


그는 갑자기 뚝 끊더니 한참 후- 자정이 넘어갈 때쯤 내게 톡을 보냈다. "고마워요. 전화해 줘서."



나는 물리적인 냄새 말고도, 마음에서도 냄새가 난다고 믿는다. 마음에도 염증이 있고 화상이 있어서 제때 치료받지 않으면 곪아서 냄새가 난다. 그것은 신체와 유기적 움직임이 있어 마음이 곪으면 몸에서도 냄새가 난다.








박 차장이 어제부로 휴직계를 냈다. 대표는 박 차장의 진단서를 보았지만 우리에게 그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가 오늘 단톡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다들 잘 나온 사진 있으면 한 장씩 보내 줘요. 요즘 그림 그리니까 얼굴 한 장씩 그려줄게요.



유난히 졸음이 쏟아지던 오후,


정적을 깨고 하나둘씩 카톡이 울렸다. 우리들은 각자 보낸 사진들을 보고 빵 터져서


사무실 한가운데로 모이고-

언제 적 사진을 보낸 거냐고-


서로를 타박하고,


웃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사진: Unsplash의Priyadharshan Sa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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