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로스쿨 적응기 - 로스쿨타임즈 기고 글
“누나, 그럼 그동안 대전에 쭉 있었던 거예요? 서울에서 오가는 줄 알았는데……”
“야, 서울에서 대전에 있는 로스쿨을 어떻게 다녀?”
5년 만의 만남이었지만 제가 충남대 로스쿨을 다녔다는 걸 잘 아는 동생이었습니다.
“일반 대학원처럼 주 2회 다니고 그러는 줄 알았죠, 뭐.”
해맑게 웃는 동생의 표정을 보니, 로스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과거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본 열람실 풍경은 충격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열어젖힌 열람실 문 너머에는 그동안 제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딴 세상’이 있었습니다. 날숨의 데시벨을 의식하게 만드는 고요함, 엎드려 자는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피곤함,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수건과 세안 도구들, 어마어마한 두께의 책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서 와, 신입. 웰컴 투 헬!”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3년을 보내지?’
고시 생활을 경험한 적 없는 초짜라는 사실은 일주일도 안 돼 들켰습니다. 자판과 마우스를 건든다는 느낌으로 조심스레 눌러왔는데 어느 날, 선배로 보이는 2명이 나란히 손을 잡고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둘은 동시에 제 마우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날, ‘무소음 마우스’라는 걸 검색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다른 동기에 비하면 무난하게 신고식을 치른 편이었습니다. 제 동기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수십 장의 포스트잇이 책상을 점령했고 더 이상 그 자리에서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모자란 부분이 많았습니다. 첫 학기부터 힘내라는 짠한 응원의 눈빛을 수시로 받았는데요. 망한 수강 신청 덕분이었습니다. 법전원의 수강 신청은 단 1초 만에 천국과 지옥을 가르더군요. 빛의 속도라고 광고하는 PC방을 일부러 찾아갔고 전날 사전 연습까지 마쳤음에도 당일, 목표대로 클릭에 성공한 건 한 과목뿐이었습니다. 선배들이 피하라고 조언했던 ‘교수님 다섯 분’ 중 무려 세 명의 교수님을 한 학기에 모두 만났습니다. ‘손가락 까딱하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다니’ 서글펐습니다. 사소해 보일지라도 유용한 팁들을 걸음마 떼듯이 배워 나갔습니다. 한자투성이의 문서를 한꺼번에 한글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의 쾌감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막막함에 토할 것 같았던 첫 시험도 생생합니다. 답안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문학판검’이라 불리는 답안지 작성법을 중간고사 이후에야 알게 되었거든요. 시험 기간은 미처 몰랐던, 내 주변의 초인들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3시간을 자고도 끄떡없어 보이는 동기를 무작정 따라 했다가 지문을 읽고 또 읽는데도 뇌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커피와 각성제를 번갈아 투입해도, 찬물을 얼굴에 끼얹어도, 추운 복도에 서 있어도 수시로 눈꺼풀이 감겼습니다. 고개가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어김없이 다른 동기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수험공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외우고 또 외워도 사라지니 까먹는 양보다 집어넣는 양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급한 대로 운동 시간을 공부 시간으로 끌어다 썼기 때문이었죠. 약국에서 파는 수험생 전용 각성제 이름이 익숙해졌습니다. 위염에 좋다는 양배추즙 등 만성 통증으로 고생하는 동기들이 공유하는 정보는 나날이 늘어났습니다.
‘공부기계로서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이 괴로웠습니다. 변호사시험 합격이라는 목표에 방해가 되는 감정들은 쓸모없게 여겨졌습니다. 재학 중 퇴직금 소송을 하면서 분노와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로 인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건강을 크게 잃을 뻔한 위기를 2번이나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비틀거리는 절 붙잡아 준 건 함께 고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법정에 가는 건 두려웠지만 기꺼이 동행해 주는 동기들이 있었기에 모든 변론기일에 출석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법 학회 활동을 하면서 가치관이 비슷해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동기들을 여럿 얻었습니다. 힘겨운 소송 내내 제 곁을 지키던 노동법 학회 회장은 어느덧 평생을 약속하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동기들과 직접 제작했던 단체복은 예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고 실제로 잘 팔리기도 해 무척 신났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로 인해 열람실이 폐쇄돼 스터디원들과 하는 수 없이 교내 식당에서 기록 문제를 풀었던 장면은 이제는 웃음이 나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힘내’, ‘고생했어’라는 포스트잇을 붙여 건넸던 캔커피들, 구름다리에서 나눴던 시시콜콜한 잡담들, 귀여운 로스쿨 고양이 구경은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습니다.
누군가 미리 알려주었다면 좀 덜 헤맸을까요?
‘이 길이 맞나?’라는 탐색과 고민은 변호사가 되어 강연자의 삶을 준비 중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답니다.
여전히 조금은 두렵지만 설레기도 합니다.
망설임 끝에 한 발 더 내딛는 용기는 늘 저를 새로운 세계로, 새로운 사람들 곁으로 이끌어 주었거든요.
정지선이 출발선으로 바뀌는 그 반짝이는 순간을 여러분도 맞이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출처 : 로스쿨타임즈(http://www.lawschooltimes.com)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