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엄마가 직접 찍은 일출 사진을 보내줬어. 1월 11일부터 시작될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 엄마는 뭘 전하고 싶었던 걸까? 그게 희망인 것 같기도 한데... K장녀인 나는 모든 게 다 부담으로 다가왔어. 이미 한번 떨어진 경험이 있었고 또다시 실망을 안겨드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어.
가족들이 한 말로 입은 상처는 유난히 깊고 오래 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말을 부모님 앞에서 꺼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안정된 직업을 갖길 원하는 부모님 뜻대로 사범대에 갔던 나인데, 다른 직업을...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많은 '아나운서'라니...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어. 더 모진 말도 하신 것 같은데... 여기에 더 쓰지는 않을게. 험하고 거친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신 말씀일 텐데... 나는 그때 많이 슬펐던 것 같아.
자식들은 본인들처럼 힘들게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크셨어. 그래서 엄격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어. 나는 어렸을 때 눈물이 참 많았는데,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사람들이 나를 얕잡아 본다고 엄청 혼났어. 한번 울음이 터지면 끅 끅 거리며 울음을 그치기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왜 계속 우냐고 다그치셨어. "엄... 마.... 왜... 눈물이... 나는지... 나도... 모르겠어... " 가쁜 호흡으로 숨을 몰아쉬며 겨우 한 글자씩 내뱉었던 기억이 나.
억지로 감정을 참아본 사람들이 겪는 경험일 텐데... 나는 성인이 돼서 내 감정을 내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는 게 싫었어. 감정과 이성이 분리되어 그 감정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이 좀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어. 차츰 나아지기는 했지만, 나는 내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그 감정 속에 존재하는 데 '노력'이 필요했어.
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는 왜 이렇게 뭔가를 자꾸 쏟아내고 싶은 건지 궁금했어. 그리고 이렇게 편지 형식의 글을 쓰는 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누군가에게 가르치려 하는 느낌이 들면 어쩌지?' '네가 뭘 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 내 안에 살고 있는 '냉정하고 엄격한 평가자'가 내게 따져 묻기도 하고 이따금 혼을 내기도 해. '이렇게 형편없는 글솜씨로 작가를 하겠다고?' 그 평가자는 한번 나타나면 쉼 없이 나를 몰아세우는 것 같아.
그래도 이런 대화체를 쓰는 건, 내가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인 것 같아. 나는 연애 4년차로 올해 결혼을 준비중인 예비 신부인데,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가 가장 좋은 건 다정한 사람이라는 거야. 부족한 나를 기다려주고 불확실한 내 선택일지라도 지지하고 응원해줘서... 나는 그 점이 제일 좋아.
예전에는 주변에 내 선택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결정을 해야 할 때, 책을 찾았어. 정규직 기자를 그만두기로 했을 때, 우리 부모님은 물론이고 내 절친조차 나를 말렸거든. 그때 가장 힘이 된 책이 바로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이야. 편지 형식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매일 건네는 그 말들이 참 따뜻했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만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사랑에 지쳐 외롭고 쓸쓸했던 나에게, 저자는 참 좋은 친구이자, 부모였어.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무작정 계속 써 내려가도 되는 건지, 브런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써나가 볼게. 눈물을 보이는 걸 두려워했던 나는 여전히 아픔을 내보이는 것이 두렵고 솔직해지는 것이 약점이 되는 게 아닐지 걱정이지만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