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희 Feb 01. 2024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 다시 쓰려는 이유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여기 어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이죠? 어떻게 잘 지내셨나요... 라고 어색한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23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변호사라는 직업을 내려놓기로 하고 강의를 하고 행사 진행을 했어요.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갔고 16년 탄 붕붕이를 떠나보냈어요. 집안 어르신의 항암치료까지... 먹먹한 날이 있었고 가슴 벅차게 감사한 날도 있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감감무소식이었다니... 제가 잘못했다 싶네요. 그래도 오늘은 2월의 첫날이니까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지난 이야기는 나중에 들려드려도 될까요?


지난 1월 제가 매일 출근했던 곳입니다. 


24년 1월,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엄청난 다짐들을 조금씩 이뤄가는 중일 수도 있고, 아직 11달이나 남았잖아~ 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털어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지난해 여름 강의를 시작하고 나서 비록 뜸했던 달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달은 없었는데요. 지난 1월은 강의 수요가 아예 없는 달이었어요. 


생산성을 자신의 가치와 연결 짓지 말라는 <게으르다는 착각>을 읽었음에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것 같아. 나의 쓸모는 뭐지...' 라는 생각에 조금은 울적했어요.  


그래도 제 옆에는 제 자존감 지킴이가 있잖아요. 덕분에 주저앉아 있기는 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답니다. "엄청 바빠질 테니,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쉬어둬야 한다"는 남편의 따뜻한 조언에도 저는 쉬는 걸 잘 못하는 편이라 대신 책을 엄청 읽었어요. 


1월에 다 읽은 책이 15권, 부분 독서는 7권이더라고요. ^^;;;


막막할 때 더 책을 붙잡는 편이에요.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이과였고 대학에서 수학교육학을 전공했으니 말 다 했죠? 


언어영역 점수가 가장 안 나왔고요. 해답지를 봐도 이해가 안 되는 국어 문제들을 들고 찾아가면 국어 선생님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도희야,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거든요. 



그런 제가 책을 파고들기 시작한 데에는 좀 슬픈 에피소드가 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했는데, 괴롭힘을 주도하던 아이에게 찾아가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는 건지 말해주면 고쳐볼게"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돌아온 대답은 그냥... 재수 없다... 였는데, '잘난 척하는 게 싫다'는 내용이었어요. 


나라는 존재가 위협받았던 그때부터 철학, 심리학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했을 리 없는 어려운 책들도 섞여 있었어요. 책을 읽던 사람이 아니니까요. 안 좋은 생각을 자주 하던 시기였는데,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 괴롭힘은 1년짜리로 끝났지만, 나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쏟아냈던 누군가의 그 가시 돋친 말들은 제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삶'을 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거든요.  


저 독서달력 이미지를 보고 '얘~ 지금 책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는 거 아냐? 잘난 척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의 목소리가 지금도 제 옆에 있답니다.    


마음이 무척 괴로울 때, 주변에 의지할 만한 어른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엄격하신 편이었고, 생계를 걱정하는 고단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나까지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책에서는 인자한 어른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너는 어째 그 모양이니!" 다그지치 않는 어른. "섬세하고 나약한 지금의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 하는 그런 가상의 어른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어요. 


30대 중반이 되기 전까지, '소속감'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기자로 일할 때도, 아나운서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그룹에는 그 직업을 최종 종착지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저는 거기에 있음에도 늘 어딘가를 향해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기에 내적 방황을 자주 했어요. 이것저것 기웃거렸어요. 누군가는 그런 저를 보고 욕심이 너무 많다고 했고, 누군가는 참 하고 싶은 것도 많다며 호기심으로 바라봐주기도 했죠. 


1월에 읽은 책 중에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라는 책이 있어요. 

나를 뺀 모두가 멋지게 사는 것만 같아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과거 상처로부터 단단한 발목이 붙들려 있다고 생각될 때,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을 때,
이럴 때조차 우리의 삶은 꽤 쓸 만하다.

아니, 이럴 때일수록 삶은 글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내 삶의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 글이 꽤 위로가 되었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편지는 잘 쓸 필요 없으니까...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 않을까?'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한번 써 보자. 


'배설' 같은 글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어느 작가님의 말이 자꾸 떠올라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작가님의 글을 읽고 위로를 많이 받았었는데, 2022년 북토크에서 만난 작가님은 제가 상상했던 분과는 다른 분이었어요. 냉철하고 분석적인 분이시더라고요. 단지 화자와 작가의 말투가 일치하지 않은 케이스였을 뿐인데, 저는 그 '배설'이란 단어에 마음이 쪼그라들었어요. 

 


1월에 읽었던 또 다른 책 <소중한 경험>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억압한 감정을 분노 대상에게 정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사실 상처 자체보다는
상처를 준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
여전히 짓눌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낼 수 있다면 그 경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아직도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억눌려 있는, '눈치 보는 자아'가 있음을 느껴요. 단지 작가 한 명의 주관적 의견일 뿐인데, 내가 '배설'하듯이 글을 쓰면 어떡하나... 누군가에게 내가 도리어 상처를 입히는 글을 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글자도 누를 없게 되더라고요.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는 게 아닐까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다리를 옴짝달싹 못할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해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라면,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서
단 1밀리미터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획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하하호호 기획법>을 쓴 저자 오구니 시로는 그래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해서 단 1 밀리미터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고 해요. 


전해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저 말이 가슴에 탁 하고 박혔어요. 


어제 '자아 포지셔닝 테스트'라는 걸 해봤는데, 결과를 읽고 나서 브런치에 편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글을 쓰려는 이유는 저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나만 이런 걸까 늘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내적 방황을 하는 사람들이요.  


저는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대전에서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를 만났고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주변에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제가 로스쿨에 들어간 2018년, 이상하게도 나이가 제법 있는 친구들이 로스쿨에 입학했는데요.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온 사람, 대기업 홍보팀을 그만두고 온 사람, 가정이 있지만 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는데, 너무 기쁜 거예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선택들을 거듭해 온 저로서는 '나만 이상한 게 아니네. 얘도 이상해~'라는 마음에 안심이 되었고요. 무척 반가웠어요.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제 바람은요. 제가 쓴 편지들을 읽고 누군가 저처럼 안심하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어딘가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편지를 쓰고 있어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썼지만 다 쓰고 브런치에 올리고 나면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같기도 해요. ㅋㅋㅋㅋㅋㅋㅋ 자존감 지킴이는 저를 '모도희'라고 부르거든요. 모순 도희. 자체입니다. 닿고 싶으면서도 숨고 싶기도 해요. 


혹시 저도 그런 걸요. 제 모습도 이래요. 하는 분이 계시다면 살짝 아는 척해 주세요. 

그럼 힘을 내서 권위자가 하는 비난의 목소리 따위는 뒤로 하고 조금 더 내달려 볼게요. 


책임감을 부담감으로 느끼는 저라서 약속은 웬만하면 잘 안 하려 해요. ㅎㅎㅎ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봐요~  ^^/  



작가의 이전글 어쩌면 누군가는 내 삶을 부러워할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