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 별의 바다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2011년 세상에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그러나 수십억 명의 지구인들은 이것으로 세상이 순식간에 통째로 바뀔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인류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신석기 혁명과 산업혁명을 잇는 또 다른 디지털 혁명의 시대로 진입한다. 그 해 토종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의 주역 안철수는 디지털 혁명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로 국민의 기대와 성원을 쫓아 정계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이 글이 쓰이는 2023년에도 죽지도 살지도 않았다.


지수가 서희와 크루즈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서희의 바람이었고, 지수의 선택이었다. 종세가 떠난 후 서희는 문에 띄게 조용해졌다. 종세가 있을 때에는 지수나 수진에게 매일 아침 출근과 등교를 재촉하는 서희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종세가 없고 나서 서희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희가 침울해하거나 우울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해졌다. 어느 날 밤 수진이 방으로 들어가는 보고 지수는 서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서희는 지수가 얼마 전 사준 스마트폰과 씨름하고 있었다.


“얘야 ~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건 지옥이야. 그냥 옛날 핸드폰으로 바꿔다오!”


“엄마! 조금만 더 써봐 ~ 낮에 수진이한테도 좀 배우고 ~ 이건 엄마 신세계야 신세계 ~“


서희는 지수의 타박을 받으며 이상하게만 보이는 스마트폰이라는 전화기 화면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가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선명하고 큰 종세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전의 핸드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능이라며 서희를 보챘다. 손에 든 스마트폰의 커다란 화면에서 환하게 웃는 종세의 모습이 보이자 서희의 동공이 흔들렸다. 서희는 이내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바꿨다고 생각했지만, 지수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엄마 ~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서희는 지수의 물음에 잠시 종세의 사진을 보며 천천히 답했다.


“글쎄 ~ 이게 보고 싶다는 감정인가? 뭔가 매일 빠트린 게 있는 것 같아. 뭔지 모르겠어. 근데 그때마다 아빠 생각이 나네 ~ 그게 아빠가 보고 싶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뭘 잃어버린 것처럼 계속 찾게 돼!”


“엄마는 아빠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제일 많이 나?”


“별!”


“별?”


“응 ~ 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별! 내가 어렸을 때에 엄마 손을 잡고 만주로 간 일이 있었어. 그땐 너무 어려서 그저 춥고 우리를 끌고 다니는 일본 순사가 무섭다는 생각뿐이 못했는데, 그때 왜놈들이 만주에 있는 아버지를 잡으려고 사냥개처럼 엄마랑 나를 몰고 다니더니 그래도 아버지를 잡지 못하니까. 그 놈들이 우릴 그냥 만주에 있는 어느 기차역에 두고는 가 버렸어”


“그때 엄마는 추위에 떠는 날 품에 안고 기차역 구석에서 쪼그려 그냥 앉아 있었지. 가지고 있는 돈도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그러다가 지나가는 어떤 남자가 조선말을 하니까. 엄마는 그 사람을 붙잡고 생사정을 했지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매달렸어”


“그 사람은 엄마의 사정을 듣고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사 주며,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그때 나는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었지”


“그리고 얼마 뒤 마차가 왔어. 우린 겁먹은 병아리 마냥 그 마차에 올라탔지 그리고는 얼마를 갔는지 난 엄마 품에서 졸고 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를 안고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거야”


“나중에 알았지만, 그 사람은 우리 모녀를 자기 집에 데려가겠다며 마차를 보냈다고 했는데, 엄마는 그 마차가 밤이 되도록 계속 가기만 해서 필시 팔려가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대책 없이 마차에서 나를 안고 뛰어내렸던 거야”


“마차는 우리가 없어진 지도 모르고 계속 달려 그대로 없어지고. 그 새까만 밤에 도망친 우리는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어 어디에도 불빛을 볼 수 없는 암흑뿐이었어”


“하지만 그대로 서있을 수만은 없었던 엄마는 날 둘러업고 무작정 그 무서운 새까만 밤을 걸었지. 난 어렸지만, 아 ~ 이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엄마 목을 한껏 잡았지. 엄마도 각오를 한 듯이 고개를 숙이고 발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어”


“그러는데 저 멀리서 작은 불빛 같은 게 어른거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손짓으로 그걸 가리켰지. 엄마는 그 불빛을 보더니 정말 미친 듯이 나를 업은 채 그곳으로 뛰어갔어”

“근데 정작 놀란 건 그다음이었지. 내가 본 건 모닥불이었고, 그 모닥불 주인은 엄마보다 어려 보이는 조선 여자였어. 그 여자도 엄마도 모두 놀랐지. 그곳에서 애를 업고 달려오는 여자라니 그분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거야”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찼지만, 그래도 애를 업고 있는 여자여서 그랬는지 금방 경계를 풀고 우리를 불 쪽으로 오게 했어. 우리 모습이 불빛에 보이니까. 마른 빵 같은 걸 주더라고. 엄마는 사양했지만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서 나를 먹였지”


“그분은 엄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결심한 듯 사실대로 말했어. 그러자 그 여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자기도 독립군이라고 하면서 뭘 전달하려고 이 검은 사막을 건너고 있는 중이라고 하는 거야. 여기는 만주의 어느 사막이고 하루는 꼬박 걸어야 마을이 나오는데 잘못하면 사막에서 뱅뱅 돌다가 말라죽는다고”


“그 말을 하면서 그 여자가 하도 서글프게 우니까. 엄마가 도리어 그 여자를 달랬어. 이렇게 여린 사람이 어떻게 이런 모진 곳에 있냐며. 엄마랑 그분이 말이 깊어지자 난 몸도 따뜻해지고 배도 부르니까 잠이 오더라고. 엄마가 날 품어서 안고 있었어. 타탁 거리는 불빛이 날 비췄지. 근데 그렇게 막 잠이 들려고 하는 내 눈에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보이는 거야. 정말 많았어 어떤 별은 주먹만 해 보이더라고. 거대한 강물 같은 은하수는 무서웠어”


“난 그 기억이 싫었어. 악몽이었지. 그 겨울 만주 허허벌판 사막에서 그것도 칠흑 같은 밤에 버려진 어린 여자 애와 엄마라니 끔찍하지 않니? 가끔 아빠랑 그 이야기를 했지만, 난 그때마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고, 아빠는 그런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아기처럼 토닥였지”


“그런데 이상하게 아빠가 없고 나니까 그 별들이 보고 싶은 거야. 정말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많은 별들이었는데, 진짜 무섭기만 했던 그 별들이 왠지 보고 싶더라. 아빠가 그 별들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지수는 서희의 말을 듣고 당장 만주의 별을 보러 가자고 했지만, 서희는 그 만주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지수가 생각한 것이 크루즈 여행이었다. 다른 여행으로 별을 볼 수는 있었지만, 종대가 떠나고 나서 눈에 띄게 힘들어하는 엄마가 가장 편하게 어렸을 적 봤다던 그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는 건 태평양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크루즈였다.


지수와 수진은 서희의 등을 떠밀다 시피해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여러 날이 지나도 서희가 말하는 별들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희는 딸과 손녀와 함께하는 크루즈 여행이 즐거웠다. 살다 보니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다 있는 큰 배였다. 지수는 한 참 에너지가 넘치는 수진의 뒤를 쫓아다니다 지쳐 모녀가 부둥켜안고 자고 있었다. 서희는 둘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엄마 품에서 저렇게 잔 적이 있었지 하고 생각했다.


잠든 지수와 수진이 깰까 봐 조심조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항해가 며칠째 계속되니 사람들도 지쳤는지 밤에도 떠들썩하던 갑판에 사람이 없었다. 서희는 오히려 조용하니 좋다고 생각하고 배의 끝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지나가던 잘생긴 젊은 선원이 영어로 뭐 필요한 것이 없냐고 상냥하게 물어서 서희가 웃으며 고맙다고 답했다. 그가 지나가고 배의 난간을 잡으니 그 밖으로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 있었다. 어떤 소리도 없었고 수평선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과 고요 만이 있었다.


그러자 서희 눈에 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들어왔다. 만주에서 보았던 별들은 하늘에만 있었는데, 바다의 별들은 하늘과 바다로 구분되지않았다. 서희는 그 수 없는 별 중에 하나였다.


"나도 이제 별이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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