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1 - 난 사랑을 그렇게 하지 않아요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지수는 종세가 떠난 후 남겨진 서희가 못내 불안했지만, 서희는 적어도 지수가 보는데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서희의 하루는 조용하고 알찼다. 서희와 지수의 생활은 이제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수진에 대한 관심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지수의 몸이 요사이 이상했다. 신경성이니 싶다가 또 괜찮아지기도 했지만, 어느 때부터 체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수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출근길에 이박사를 찾았다. 이박사는 갑자기 찾아온 지수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서희의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박사님 제가 요즘 살이 자꾸 빠져요. 밥맛도 없고”


“그래? 달리 아픈 데는 없고?”


이박사의 이리저리 지수를 살피더니, 어딘가 전화를 하고는 지수에게 검사를 받으라고 하면서 ‘아프면 약 먹으면 돼! 걱정 마!”’라고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지수의 말을 들은 담당의는 내시경을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수는 의사 아빠와 살면서도 그런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사실 종세는 매번 서희와 지수에게 정기 검진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서희와 지수는 그저 알았다고만 하고 말았다.


며칠뒤 지수는 병원에서 준 맥주캔 같이 생긴 물약을 먹고 속을 비운 뒤 진료실을 찾았다. 담당의는 지수를 옆으로 누이고 검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담당의는 시작된 지 일분도 안되어 검사를 멈추고 지수를 일어나게 했다.


“언제부터 이상하셨어요?”


지수가 멈칫했다. 그리고 담당의는 지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말했다.


“일단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원장님께 말씀드릴 테니 상의해 보세요”

담당의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박사는 긴장한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 지수를 맞았다.


“지수야! 이게 도대체 어찌 된 거야 ~”


“박사님 ~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야! 아니야! 아직 몰라 ~ 우선 대학병원에서 다시 진단받아보자. 요즘은 이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 ~”


“박사님 ~ 무슨 일인지 말씀 좀 해 주세요. 괜히 겁나게 하지 마시고”


“지수야 ~ 그냥 의사말 들어! 일단 검사해 보자 겁부터 먹지 말고”


대학병원으로 가던 날 지수는 서희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며칠 출장을 다녀온다고만 했다. 지수는 이박사에게 절대로 엄마에게 먼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서희는 출장 간다는 지수에게 늘 하던 차조심을 잊지 않았고, 등교가 바쁜 수진은 지수를 지나쳐 도망치듯 먼저 집을 나섰다.


입원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지수 앞에 담당 의사가 왔다.


“저는 외과 김오준이라고 합니다. 이원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네 교수님! 이렇게 봬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오히려 다행이지요”


잠시 적막이 흐르고 김교수가 입을 열었다.


“좀 심각합니다. 대장암인데 아마 간으로 전이된 듯이 보입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심각한 건가요?”


“지수 씨! 그런 건 환자가 알 필요 없어요. 치료만 잘 받으면 돼요. 너무 걱정 마세요”


입원실 창가에 비친 서울의 밤은 가득했다. 하나하나의 불빛이 이리저리 오가며 긴 불빛으로 이어졌다. 지수는 그 불빛 속을 가로지른 하나의 점이었다. 지수는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편했다. 마음이 가라앉은 채로 그냥 편안하게 깊은 바닷속으로 한 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다음 날 지수는 언제 잠들었지도 모른 채 아침을 맞았다. 그날도 무슨 검사가 계속되었지만 지수는 꼿꼿한 자세가 흐트러져 보일까 그것이 걱정될 뿐이었다. 김교수가 지수에게 말했다. 그의 말이 조금 멀리서 들리는듯해서 지수는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지수 씨 사모님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수술이 많이 시급합니다”


“교수님! 먼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어요. 가능한 상세 하게요”


김교수는 잠시 생각하듯 하다가 이내 입을 떼었다.


“흠 ~ 지수 씨 잘 들으세요. 의사가 항상 환자에게 솔직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닌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수 씨의 일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현재 지수 씨의 상태는 위중해 보입니다. 너무 늦게 병원에 왔어요. 대장과 전이된 간을 한 번에 절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큰 수술이 될 것 같고요. 어려운 수술이 될 듯싶습니다. 물론 잘 되겠지만, 그렇게 안심할 상황도 아니고, 보통 암이 전이된 경우 그 예후도 확실치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데요?. 수술은 어떻게 하는 거고요”


“지수 씨!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지수 씨는 보호자가 필요해요. 수술도 치료도 그저 병원이 하는 겁니다. 앞으로의 일정을 지수 씨가 정리할 필요는 없어요. 지수 씨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몸을 맡겨야 해요. 사모님께 말씀드리기 어려우면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그날밤도 지수는 창가에 비치는 붉은 도시의 물결을 보았다. ‘보호자? 엄마에게 이 말을 한다고?’ 지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서희에게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다. 그래도 보호자는 필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아니었고, 그러고 나니 지수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지수의 눈이 가득해졌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지수는 큰 숨을 쉬고 태길에게 연락했다. 태길은 병원에 있다는 지수의 말을 듣고 곧바로 지수를 찾았다. 병원에 있는 지수는 너무나도 멀쩡했고, 평소보다 생기가 있어 보이기까지 해서 태길은 더 놀랐다.


지수가 놀란 태길을 앉혀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수의 이야기는 짧지 않았지만 태길은 지수의 말을 한 번도 끊지 않았다. 태길은 지수의 말이 멈출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놀란 표정도 짓지 않았다. 지수의 말이 멈추고 태길은 지수의 눈을 바라보며 한 참을 아무 말이 없다가 침묵 끝에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 씨! 난 사랑을 그렇게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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