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4 수술대 위에서
From 1919 to 2022
날이 밝자 지수의 병실이 바빴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수시로 드나들면서 무엇인지 몇 번이나 같은 것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지수 앞에는 갈아입을 수술복이 놓여있었다. 지수가 커튼 속에서 수술북으로 환복 하자 옆에 있던 태길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한 너스레를 떨던 태길에게 지수가 오히려 웃었다.
“수술은 내가 받는데 왜 태길 씨가 떨어요”
잠시 뒤 이동식 침대에 누운 지수가 병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누워서 보이는 병동의 복도는 어지러웠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계속해서 말을 했지만 지수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동 중 눈에 스쳐 보이는 천장의 불빛만이 아른거리며 모든 게 혼란스러웠지만, 지수의 마음은 정지한 듯 고요했다.
여러 겹으로 보이는 수술실의 첫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는 태길에게 더 이상은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태길이 지수의 손을 잡았다. 태길은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는 지수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 태길이 지수의 손을 놓지 못하자 간호사가 태길을 손을 잡아떼었다.
태길의 모습이 멀어지자 첫 번째 문이 닫히고 두 번째 문이 열렸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는 여러 명의 의사들이 보였고, 지수의 베드가 수술실의 중앙에 놓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넓은 수술실과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지수가 놀라 눈이 커지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지수의 어깨를 짚으며 ‘괜찮습니다. 다 잘 될 거예요. 편하게 계시면 됩니다’라고 나긋히 말했다. 따뜻했다. 지수가 살며시 눈을 감으며 평온해 지자 누군가 지수의 신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이제 하나 둘 셋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자 지수는 눈이 순간 다시 떠져 너무나 밝은 불빛이 부셨지만 이내 작아지면서 닫혔다.
지수의 수술은 오래도록 끝나지 않았다. 태길은 한 여섯 시간 정도는 시간을 세었으나 그다음부터는 세지 않았다. 태길은 시계를 보며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처음 알았다. 시곗바늘은 쳐다볼수록 더 천천히 움직였다.
그 시간 서희는 집에 있었다. 수진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수진의 조용한 눈빛은 서희의 다문 입을 보고 이미 무언가를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서희는 수진에게 엄마의 수술을 말하지 않았다. 서희와 지수에게 오늘의 수진은 어제와 같은 날이어야 했고, 내일 또한 오늘 같은 평범한 날이어야 했다. 그것을 지수가 원했다.
“엄마 ~ 미안해! 하지만, 수진이에게는 그렇게 해줘. 사실 난 지금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마치 멀쩡하게 있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아. 수술을 받으면 어찌 되는지 수술 중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어요. 모두가 다 물음표야 엄마! 무서워 ~ 그런데 수진이한테는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죽어도 ~ 엄마 나 잘할 수 있겠지?”
“지수야! 넌 엄마 아빠 딸이야 ~ 아빠 엄마는 언제나 네 곁에 있어. 그 곁을 떠난 적이 없단다.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네 곁에 있을 거다. 그러니 너도 수진이를 그렇게 지켜야 해! 우리는 이제까지 어떤 것이든 포기한 적이 없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 딸은 분명히 건강하게 이 엄마 앞에 꼿꼿이 서서 잘 다녀왔다고 말해 줄 거야! 무섭고 힘들겠지만 우리 딸은 이겨낼 거다.
“엄마가 수진이 옆에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그냥 해 내면 된다. 지수야! 우리 딸 지수가 아픈 만큼 똑같이 나도 아플 거야. 그러니 내 딸이 안 아프면 나도 안 아프단다. 지수야 지금 아빠가 옆에 있어. 무서워하지 마 지수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빠가 우리 지수를 지키고 있어!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지수의 수술시간이 열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중간에 김교수가 나와 지수의 신장이 너무 부어 있어서 긴급으로 담당과를 불렀는데, 만약 신장 쪽으로도 문제가 있으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마침 서희의 전화가 오자 태길은 차마 김교수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길의 목소리가 잠겨지자 서희가 단호해졌다.
“걱정 말게! 그건 잘되고 있다는 말이야. 우리 지수가 잘 버티고 있는 거야. 정신 바짝 차리고 지수를 지켜야 하네!”
서희의 목소리는 무섭도록 조용했다. 태길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술은 열 시간을 훨씬 이 나 지나서야 끝났다. 탈진한 듯 보이는 김교수는 무사히 끝났다고 전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길은 김교수를 부둥켜안을 뻔했지만, 정말 다 쥐어짜 낸 듯한 김교수를 보고는 차마 더 이상 무엇을 말하지 못했다. 태길이 김교수의 뒤에서 고개를 숙였다.
“잠드시면 안 돼요! 잠들지 마세요!”
지수가 눈을 뜨자 간호사가 날카롭게 말했다. 하지만 지수의 눈은 계속 감겼다 떴다를 반복하다가 차츰 의식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수는 통증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너무 많이 감겨있는 주사줄 때문에 마치 넝쿨에 갇힌 것 같이 답답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 지수 씨가 잘 견뎌 냈어요. 수술부위가 커서 일상적인 생활을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무튼 잘 낳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앞으로 며칠간 많이 아플 겁니다. 계속 진통제를 놓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안 아프진 않아요.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게만 되면 그다음부터는 많이 쉬워질 겁니다”
병실로 돌아온 지수에서 김교수가 한 말이었다. 지수의 눈은 아직도 반쯤 감겨 있었지만 소리는 그 보다 명확하게 들렸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병실에는 숙희가 와 있었다. 서희가 수술 후에는 남자가 간호하기 힘들다며 숙희에게 부탁했다.
“에구 ~ 이 독한 것 아! 어떻게 이걸 혼자 하겠다고 하니 ~”
지수가 울고 있는 숙희의 손을 잡고 작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말했다.
“난 ~ 괜찮아 ~ 엄마랑 수진이는 괜찮아?”
그저 2~3일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지수는 집을 떠난 지 2~3년은 지난 것 같았다. 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웠다. 이 모든 게 지나고 정말 일어설 수 있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웠지만, 병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말이 의사나 간호사의 말보다 더 미더웠다.
“금방 나아요. 며칠만 지나면 걸어서 퇴원도 할걸요. 병원에서 수술만 잘됐다고 하면 된 거예요. 애쓰지 마요. 저절로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