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3 수술전야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늦은 밤 다음날 이른 아침 수술을 앞두고 지수는 병실에서 잠시 혼자가 되었다. 하루 종일 바빴다. 무슨 검사가 그리 많은지 또 무슨 서명은 그리 많이 받는지 하도 많은 의사가 다녀가서 헷갈릴 정도였다. 의사들은 거의 뛰어다녔다. 교수쯤은 되어야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모두들 며칠은 못 잔 사람들처럼 퀭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김교수가 다녀갔다.


“지수 씨 내일 잘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수술이 어려운 케이스인가요? 선생님들이 하도 많이 다녀 가서 좀 놀랐어요”


“하하하 ~ 그래요? 뭐 사실 쉽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몇 번 설명드렸지만 대장 쪽 부위가 좋지 않고, 간 부위도 개복을 해야 절개할 부위를 확실히 알 수는 상황입니다. 두 팀이 나눠서 연속으로 수술해야 하는 복잡한 수술이고 이런 경우 돌발적인 상황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큰 수술이 될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지수 씨에게 하는 것은 선친께서 제가 제일 존경하는 스승 같은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께 의사가 무엇인지를 보고 배웠습니다. 그런 제가 지수 씨를 수술한다는 것에 망설였지만, 이원장님이 그분도 네게 맡겼을 것이라고 해주셔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만큼 준비하고 또 준비했어요. 아무것도 약속드릴 수 없지만, 그분께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 지수 씨도 마음 단단히 하세요. 우리 모두가 같이 하는 겁니다. 수술은 의사가 하지만 견디는 것은 환자가 해야 합니다”


김교수가 나가고 나서 지수가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일이면 내 몸의 구석구석에 칼과 가위가 드나들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겠구나 싶었다. 수술 중에 죽기야 할까 했지만, 수술 결과가 좋지 않다면 또 어찌해야 하는지. 수술이 잘 된다고 해도 그다음에는 또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단순히 용기를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눈을 가리고 절벽 위에 선 느낌이었다. 무섭지는 않았으나 두려웠고, 그렇다고 뛰어내리지 않을 방법도 없었다.


그때 태길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태길은 요 며칠 정말 바보처럼 행동했다. 말도 안 되는 지수의 타박이 있어도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어제는 그런 태길에게 지수는 화를 내기도 했다.

“태길 씨! 이제 병원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여기저기서 전화 좀 넣게 하지 마세요. 나 완전히 병원에서 진상 환자가 되었단 말이에요. 아니 ~ 무슨 부탁도 정도껏 해야지 김교수가 저렇게 있는데, 사방팔방 전화해서 잘해 달라고 하면 뭐 뭘 ~ 더 잘해 줄 수 있을 있을 것 같아요. 의사가 수술하는데 부탁받으면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원! 젊은 의사들이 뒤에서 하는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어서 허 참 ~”


“뭐라고 했는데요? 젊은 의사들이 ~ ”


“하 ~ 나원 참 ~ 그 사람들이 글쎄 하도 여기저기서 물어보고 잘하라고 해서 도대체 자기들의 뭘 더 잘할 수 있는지 콘퍼런스를 했데요!”


“그래서요?”


“그렇다고 의사들이 뭘 더 잘해 줄 게 있겠어요. 수술이 잘하라면 잘하고 아무 말 없으면 적당히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궁리해 낸 게 수술 끝나고 그냥 꿰매지 말고 성형외과를 부를까 하면서 웃었데요. 글쎄 ~”


“오 ~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그럼 우리 정말 성형외과 부릅시다”


“태길 씨!!! 이젠 웃기도 힘드네! 웃기지 말고요. 괜히 여기저기 전화 넣지 마세요. 태길 씨 그런 거 아무것도 도움 안 돼요”


지수를 간병하기로 한 후 태길은 서희를 보고는 두 여자가 모두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서희는 지수의 소식을 듣고 잠시 눈동자가 커지더니 이내 병원에 있는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대부분 지수의 말을 들었다. 서희가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야! 알았다. 우린 이것보다도 더 긴 어둠을 뚷고 나왔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네 아빠가 의사야! 아빠는 평생을 남을 위해 살았다. 아빠가 어디에 있던 널 지킬 거야! 네가 하자는 대로 하마! 당분간 수진이한테는 말하지 않을께. 이런저런 생각 말고 수술 잘 받고 두 발로 꼿꼿이 서서 우리 앞에 오렴. 난 수진이랑 이 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으마”


그 길로 서희는 지수의 짐을 싸서 태길에게 전했다. 서희는 태길에게 지수를 부탁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무섭도록 차가운 서희의 모습에 태길은 모녀가 정말 똑같이 독하다 싶었다. 서희로부터 짐을 받아 든 태길이 집문을 나서고 담장 옆에 세워둔 차로 가던 중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대문이 닫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대문과 땅 사이에 있는 작은 틈새로 보이는 서희 발이 움직임 없이 그대로 있었다. 태길이 한 참을 떠나지 못하고 눈길을 떼지 못했지만, 서희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태길의 차가 다시 그곳을 지나갈 때에도 서희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태길은 차마 그 모습을 지수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태길의 너스레가 많아졌고, 지수가 보지 않는데서 이리저리 온갖 연줄을 통해 병원에 압력을 넌 다고 넌 것인데, 괜히 분란만 만들고, 도리어 지수가 눈치를 보게 되자 태길에게 투덜거린 것이었다.


“네 ~ 지수 씨! 알았어요. 앞으론 안 그럴 테니까 기분 풀고 낼 수술커디션이나 조절하자고요. 헤헤헤 ~ ”


“아 ~ 참 ~ 그리고 내 허리 좀 만져볼래요?”


“왜요? 어디 아파요?”


지수가 태길의 허리를 만지자 허리춤에서 묵직한 금속이 잡혔다.


“이게 뭐예요?”


깜짝 놀란 지수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태길을 보았다.


“이거 ~ 권총입니다. 내가 그랬죠! 권총을 들고 협박해서라도 내가 지수 씨 살린다고 나 진짜 권총 가져왔어요”

“하 ~ 원래 태길 씨 이런 푼수였어요? 내가 진짜 웃음도 안 나오네 ~ 어이구 ~ 어떻게 그런 유치한 생각을 ~”


지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헤헤 거리며 연신 식은땀을 흘리는 태길을 보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 웃었어요. 지수 씨 지수 씨 사흘 만에 처음 웃은 거예요. 하하하”


너털거리며 웃는 태길을 보고 지수가 실눈으로 쌜쭉했지만, 이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만 웃기고 내 배를 한번 만져줘요. 겉으로 말고 속으로 손을 넣어서요”


“이게 내가 태길 씨에게 마지막으로 만지게 할 수 있는 아무런 상처 없는 깨끗한 몸이에요. 이제 이 밤이 지나면 이런 건 없어요. 고마워요. 좋아해 줘서 그래서 내내 미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모습으로 당신에게 남고 싶어요. 고마워요. 지금 같이 있어줘서 ~”

지수와 태길이 그 밤만큼이나 길게 서로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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