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 05 이젠 보내 줄게
From 1919 to 2022
여보! 나 ~ 아주 큰 수술을 했어
배에 가슴에서부터 배꼽 아래까지 큰 칼자국이 생겼다. 얼마나 흉한지 몰라. 이제 목욕탕도 갈 수 없게 됐어. 나중에 성형외과에서 좀 개선해 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없던 것처럼은 안된다네. 이러고 어찌 살아야 할지 걱정이야. 하지만 사실 이런 건 나중 문제고 사실 나 지금 많이 아파.
수술은 잘됐다지만 그래도 항암치료는 받아야 했어. 이미 암이 전이된 상태라 생존 확률이 5% 미만이래. 의사들은 그런 건 통계에 불과하고 난 좋은 케이스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뭐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수술 뒤에는 배가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리저리 누워봐도 안 되는 거야. 수진이 알까 봐 아프다는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났어. 그리고 항암치료라는 건 또 얼마나 독한지. 주사를 맞으면 발끝에서부터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처럼 스멀스멀 기분 나쁜 게 구역질을 할 때까지 올라와. 좀 괜찮아진다 싶으면 다시 주사를 맞아야 하니까 나중에는 겁이 다 나더라고.
그걸 다 버텨내고도 방사선 치료는 더 지독했어.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내장을 다 태워내는 것 같이 아팠어. 무슨 치료라는 게 점점 더 안 아파져야 하는데, 항암치료는 그런 게 아니더라. 몸 견뎌낼 수 있는 한도까지 밀어붙이는 거였어. 그래도 나 ~ 다 ~ 견뎌냈다. 나 잘했지? 너무 힘들어서 그냥 하나님한테 뜻대로 하시라고 할 정도였는데 결국 견뎌냈어.
여보! 나 ~ 고생했지? 어쨌든 이렇게 버텨냈으니 그만큼은 아마 더 살겠지. 그래도 안되면 당신한테 갈 수 있으니 좋지 뭐! 히 ~ 여보 오늘은 내가 뭐라 해도 혼내지 말아 줘. 끝까지 버틸 거니까. 그것만은 약속할게 내가 버틸 수 있는 한은 버틸게 그건 걱정하지 마.
여보 이제 나 당신 그리워 않아야 할 것 같아 ~ 당신이 그렇게 황망하게 떠나고서 한시도 당신을 잊지 못했어. 당신을 욕하기도 하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숨도 쉬기 어려웠지만 우리에게 남은 수진이를 보면서 견뎠어.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 없어 보니 알겠더라. 당신 같은 남자가 드물다는 거 그래서 그렇게 잊지 못했을까? 그런데 지금 내 곁에 당신도 아는 태길 씨가 있어. 당신만큼 좋은 남자 같아. 그래도 당신을 잊은 적이 없는데, 이젠 당신을 보내 줄 때인 것 같아.
그 사람이 당신만큼 날 좋아해. 곁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그래도 그 사람한테 당신 자리를 내 준 적은 없어.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야.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우리 꼭 오래오래 살자. 우리가 좋아했던 그 바다에서 늙어지도록 살면서 꼭 붙어서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
근데 나 이제 이 사람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밀어낼 자신이 없네. 가장 어려울 때 항상 같이 있어 줬어.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을 거야. 아빠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 꼭 당신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야. 내가 자신이 없어서 그래. 같이 있는 건 다행이지만 또다시 결혼이라는 터울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렇다고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사랑하는 만큼 책임질 거고, 행복한 만큼 배려하고, 당신이 내게 해 준 것처럼 그렇게 하려고 해.
그래서 이제 당신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 당신은 내게서 지울 수도 지워지지도 않을 테지만 더 이상 그리워하지는 않으려고 ~ 그리 당신을 보내려고 그래. 그 사람 나한테 그만큼 했어. 종기야! 나 미워하지 않을 거지. 사랑해! 이승에서는 이게 네게 하는 마지막 사랑 고백이네. 고마웠고, 그리웠고, 사랑했어 정말 너무 많이 보고 싶다.
당신의 그곳과 나의 이곳은 서로의 순간에서 영원이 되겠지. 여보! 여기서 잘 살다 갈게. 이 곳에서는 너무 길었던 그리움이었고, 너무 짧은 행복이었지만, 순간이 영원이 될 때 그 때는 다시 꼭 다시 만나서 우리 오래오래 사랑하자.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종기야!
내 그립고 가여운 아픈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