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간 일기장 - 1

노진탁 창작소설 - 3

by 노진탁

류블랴나에서의 긴 취재 생활을 마치고 진탁은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 달의 휴가가 주어져 유럽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더 돌고 갈 생각이었다.


문제는, 오랜 류블랴나 생활로 짐이 늘었다는 것이었다.

40kg이 넘는 캐리어를 끌고 다니느냐, 돈을 내서라도 편하게 다니느냐.


원고료는 거의 동나고 없었다.

류블랴나를 베이스캠프로 해서 너무 많은 곳을 다닌 탓이었다.


하지만 저번 여행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울퉁불퉁한 돌밭길 때문에 무거운 캐리어가 자꾸 넘어지기 일쑤였다.

무게 때문에 들고 다닐 수도 없고, 계속 중심을 잡아가며 숙소까지 가야 했다.

그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비싼 돈을 내서라도 남은 여행을 쾌적하게 마치고 싶었다.


진탁은 큰맘을 먹고 류블랴나 우체국으로 향했다.

무게가 상당해서 100유로가 넘는 돈을 내야 했다.

그 돈이 아까웠으나, 남은 두 달 동안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야 그 이상의 값어치가 된다고 생각했다.


발송지와 도착지를 모두 수기로, 그것도 슬로베니아어로 써야 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슬로베니아어를 모르는데, 맞게 쓰고 있는 것일까?’

‘내 글씨를 못 알아봐서 엄한 곳으로 가버리면 어쩌나.’


영어 철자와는 조금 다른 슬라브 문자를 또박또박 기재했다.

그래도 다른 건 여러 번 확인해 보며 맞게 썼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 한 가지가 문제였다.

‘대한민국’을 슬로베니아로 뭐라고 하던가.


하필이면 이놈의 우체국에선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웬만하면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영어를 곧잘 하던데,

우체국 직원이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Južna? Severna?” (“남쪽이야, 북쪽이야?”)


그 말의 의미를 알 턱이 없는 진탁은 인상을 쓰며 “싸우쓰 코리아”만 연신 외쳐댔다.

‘이 무식한 사람은 ‘싸우쓰’의 뜻도 모르나....’

20분 뒤에 역으로 가야 하는데 남인지 북인지를 몰라 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Južna Koreja?”


‘꼬레야’라는 말이 들리자 그제야 진탁의 표정이 펴졌다.

진탁은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젊은 슬로베니아인에게 물었다.

“주즈나 꼬레야가 싸우쓰 코리아인가요?”

“그렇습니다.”


마음이 급했던 진탁은 “주즈나 꼬레야!”를 외쳤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확인하고는, 딱 한 마디만 하고 우체국을 뛰어나왔다.


늦어도 몇 개월 후에 캐리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탁은 그 뒤로 평생 다시 이 캐리어를 찾을 수 없었다.








타야 비드마르(Taja Vidmar)는 우체국을 싫어하는 우체국 직원이다.

소싯적에는 극작가를 꿈꾸는 반짝거리는 소녀였지만, 이제는 세파에 꺾인 평범한 중년 여성이다.


슬로베니아는 원칙적으로 대학 등록금이 공짜였다.

‘원칙적으로.’


처음에 타야는 극작가가 되고 싶어 예술 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타야는 금세 불행해졌다.


극본을 쓰는 남자친구는 타야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넌 못생겼고, 재능도 없어. 너 같은 애가 극작가가 되는 건 말이 되지 않아.”


매일매일의 생활이 미칠 것 같아 타야는 고향인 프투이로 돌아가 잠적했다.


타야가 극작가가 되겠다며 예술 학교로 갈 때 타야의 아빠인 보얀(Bojan)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탐탁지 않게 여기면 어쩔 건데?

어차피 대학 등록금도 공짜겠다, 타야는 아빠 말도 듣지 않고 류블랴나로 도망가듯 떠났다.


기숙사비도 공짜. 나머지 생활비는 타야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결국 1년도 못 되어 프투이로 돌아온 가엾은 타야.


보얀도 분명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보얀은 딸의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줄 줄 모르는 아빠였다.


“거봐, 내가 뭐라 했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간호학을 해서 간호사가 되면 훨씬 나았을 거 아니야.”

딸의 아픔을 보듬기보다, 보얀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어렸던 타야는 보얀의 말을 거슬러서 자신이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지금이라도 보얀의 말을 들으면 다시 또 불행에 빠지지 않겠지.


타야는 겨우내 먹고 자기만 했다.

조금 따뜻해질 때쯤, 류블랴나로 돌아가 간호학 전공자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슬로베니아의 고등교육 정책은 관대했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알면 얼마나 알까.


기대를 안고 대학에 왔어도 막상 경험을 해보면 지금의 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 정부는 대학을 그만두고 또다시 다른 전공을 택하여 새로이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등록금을 면제해 주었다.


너희는 실패할 수 있다.

실패해도 된다.

실패를 겪었으면 이제 정말 온전히 너희의 판단으로 양껏 공부를 해라.

학비는 걱정하지 마라.

그것만큼은 우리가 꼭 책임지겠다.


간호대에 입학한 타야는 또 한 번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했다.

다시는 보얀의 말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타야는 간호사가 되었을까?


류블랴나는 심심한 곳이다.

강가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베어 물고 수다를 떠는 것 말고는 즐길 거리가 없었다.

남자에게 데여 딱히 데이트를 하고 싶지 않았던 타야는 연극을 보러 극장에 갔다.


연극을 보는 타야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간호사가 되어 병든 사람들을 만질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타야는 곧장 학교를 그만뒀다.

프투이로는 돌아가지는 않았다.


대신 편지를 썼다.

“보얀, 난 내 인생을 살아볼 거예요. 안녕히 계세요. 당신의 짐이 되진 않을게요. 하지만 당신도 나를 찾지 말아 주세요.”


세 번째 전공으로 타야는 영문학을 택했다.

극작가가 되긴 글렀지만, 결국 극을 하려고 했던 건 사람에 대해 그리는 작품을 사랑해서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대학 등록금을 내야 했다.


두 번째 대학 등록금까지는 국가에서 책임을 져주었지만, 세 번째부터는 본인 부담이었다.

합리적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국가가 대학 등록금을 내준다면, 평생 대학만 다니며 놀고먹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 아닌가.


타야는 영문학을 공부했고, 잠시나마 행복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 여러 군데에 서류를 냈다.

좁은 나라에서 할 건 많지 않았다.


영세한 잡지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지만 회사는 금방 문을 닫았다.

파트타임을 전전하다 대학 시절에 했던 아르바이트를 다시 하기도 했다.

그런 삶이 계속되다가 프투이로부터 어떤 소식이 들려왔다.


보얀 비드마르가 죽었다.


타야 비드마르는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보얀으로부터 벗어나 사랑으로 넘치는 행복한 세상을 그리기 위해 극작가가 되려고 했다. 극작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영문학을 하면 그나마 행복할 것 같아 오롯이 내 의지대로 영문학을 했다. 쪼들리는 삶일지라도 간호사를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현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충만해지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제 쉬고 싶다.’


사실 이 생각을 한 지는 꽤 됐다.

하지만 예술 학교를 그만뒀을 때처럼, 지금의 실패를 인정하고 또다시 프투이로 돌아가는 것만큼은 죽어도 싫었다.

보얀 비드마르가 옳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싫었다.

어쩌면 타야는 이미 지쳤지만 보얀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모른다.


보얀이 죽었는데, 이제 보얀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보얀이 그렇게 싫었지만, 보얀 때문에 버텨온 젊음이었다.


류블랴나로 돌아온 타야는 일을 그만두었다.

안락한 일을 찾다가 우체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우체국 일은 쉬웠으나 지루했다.

타야의 낙은 담배뿐이었다.

그 어떠한 의미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의 태도는 특별히 나쁠 게 없었다.

해주라는 대로 하면 됐을 뿐이었다.


가끔 진상이 있을 것이라고 들었지만, 극장과 병원과 회사에서 별의별 사람을 다 겪어본 타야에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동양인이 나타나기 전까진.


사실 타야는 영어를 곧잘 했다.

류블랴나에서 공부한 사람은 다 영어를 할 줄 알고, 타야는 거기에 영문학까지 공부했다.

간단한 영어를 못할 리가 없었다.


어떤 어린 동양인 남자애가 우체국에 들어오자, 타야의 기억 하나가 살아났다.

세 번째 대학 시절에 자신을 무시하고 골탕 먹인 한국놈이 생각났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는데, 짐을 ‘싸우쓰 코리아’에 보내려는데 뭐라고 써야 하냐고 물었다.

타야는 못된 마음을 먹었다.

‘나를 골탕 먹였던 그놈이랑 같은 나라 놈이군.’


타야는 영어를 못하는 척했다.

“Južna? Severna?” (“남쪽이야, 북쪽이야?”)


한참을 쩔쩔매는 놈의 표정에 타야는 통쾌함을 느꼈다.

드디어 놈은 ‘싸우쓰’가 ‘주즈나’라는 걸 알아챘다.

놈이 계속 타야를 지켜봤다면 타야는 ‘주즈나 코레야’라고 쓰고 장난을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놈은 한 마디만을 남기고 우체국을 나갔다.

“Hvala” (“고맙습니다.”)


‘흥, 어디서 고맙다는 말을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확인도 안 해보고 돌아가다니 허술한 놈이군.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볼까.’

타야는 도착지 국가를 펜으로 썼다.


“Severna Koreja” (“북한”)



내 짐을 부디 대한민국으로 보내주세요. (이미지는 Chat GPT를 통하여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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