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만취상태, 사건화 되면 어떻게 판단할까?
안녕하세요. 조원진변호사입니다.
제가 성범죄전문변호사로 활동한지가 이제 10년 쯤 되었는데, 그 사이에 성에 관한 인식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성범죄가 인정되는 기준이 상당히 넓어졌고, 또 자주 발생하는 유형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성범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동원된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쫓아가 제압을 하거나 강제력을 사용하여 추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안들이 사건화가 되었는데요. 최근에는 이런 사건유형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건 유형이 많냐, 술과 관련된 문제가 많습니다. 술집, 클럽 등에서 소위 '헌팅'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만취하면 인적이 드문 곳, 숙박업소로 이동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 대표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형법상 '준강간죄', '준강제추행죄' 등의 규정이 적용되는데요. 강간은 맞지만 폭행이나 협박등의 강제력이 필요없을 정도로 피해자가 '항거불능'상태인 점을 이용한 강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피해자가 반항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범죄는, 피해자가 멀쩡할 때 유형력을 행사하여 성범죄를 한 것과 같다는 의미인데요. 그 법정형 또한 강간-준강간, 강제추행-준강제추행이 각각 같습니다.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준강간죄 사건에 대해서 강간죄와 완전히 동일한 처벌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 감경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 죄의 성립과 관련해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제 경험상 준강간은 '무죄'비율도 높은 편입니다.
그 이유는 준강간죄의 성립에 있어서 피해자가 당시에 '항거불능'상태였는지에 대한 부분, 또 사실은 두 사람이 합의를 한 관계는 아니었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꼭 판단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인데요. 사건 당시의 기억은 당사자들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사건의 전후 상황, 행동 등을 기초로 유추하여 판단을 하게 됩니다.
즉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다면 준강간죄가 바로 인정될 것이고,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면 합의가 있었는지를 전제로 준강간죄 성립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피해자가 어느정도는 되어야 '항거불능'으로 판단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한데, 판례에 따르면 '신체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인하여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거나 행사하기 곤란한 상태'가 바로 항거불능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 술에 취해 정신을 완전히 잃은 상태 (패싱아웃, Passing out)에 이르렀다면 항거불능상태가 당연히 인정되고
- 술에 취해 움직이거나 말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기억을 못하는 상태(블랙아웃, black out)였다면 항거불능상태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며,
- 술에 취했다가 잠깐 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정상적인 신체거동이 어려운 상태라면 항거불능의 상태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이러한 항거불능 상태는 음주운전사건에서와 같이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이나 소주, 맥주를 몇잔/몇병이상 마셨을 때 발생한다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일의 컨디션, 개인차 등에 따라 만취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나 주량에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실무에서는 준강간죄로 피소가 되면 본인 및 피해자의 평소주량, 당일에 마신 술의 양 및 마시는 데 걸린 시간, 사건 전후 컨디션을 해치는 요소, 사건직전 주변/숙박업소 입구 및 복도의 CCTV를 보고 피해자의 항거불능 여부를 확인, 준강간죄의 성립에 대해서 판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