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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아닌 Oct 01. 2021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하여

Day 5

잇몸이 쉽게 붓는 편이다. 평소보다 한두 시간만 잠을 못 자더라도 다음 날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조금씩 입안이 얼얼해지다가 두통이 생기는 식이다. 가끔은 잇몸이 아파서 눈이 안 떠질 때가 있었다. 그런 날에는 이른 저녁부터 이불을 덮고 잠에 들어야 했다. 체질이 바뀐 곳은 군대 같았다. 군생활을 하면서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서 변한 일인지도 모른다. 잇몸이 아프던 때부터 체력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잠을 설치는 날에는 잠에 들지 못하는 것보다 내일 느낄 통증에 겁이 났다. 잇몸이 붓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수 년 전에는 밤을 새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늦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한숨도 자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새삼 내 몸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졌다. 늙어간다는 것이 가늠보다 빨랐다.


제대를 하고서 외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수 년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뵙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치매가 심해졌다는 말은 미리 전해 들었다.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다. 같은 말에는 같은 대답을 해주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안방에서 걸어 나오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내가 기억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편찮은 모습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후로 나는 길가의 노인들을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어느 날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언젠가 나의 모습도 변할 것이다. 전혀 모르는 나의 얼굴이 이미 내 몸속 어딘가에 있다.


최근에는 종교학에 관한 책을 읽었다. 신학자와 종교학자, 그리고 과학자가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었다. 과학자는 꽤나 호전적인 무신론자였다. 그는 신학자와 종교학자에게 종교의 해악성을 주장했다. 원리주의자들이 벌이는 종교적 폭력이라거나 진화론을 부정하는 전근대적 행위를 보면 종교는 사라져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신학자와 종교학자의 의견을 대체로 비슷했다. 두 사람은 과학자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종교의 해악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종교 자체는 사라질 수 없다. 인간의 마음과 사고작용에는 과학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문득 나는 캄캄해서 그 속이 보이지 않는 자리를 상상했다. 이를 테면 우리집 앞 골목길이었다. 골목에서 현관으로 들어서는 샛길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저녁이면 그늘이 졌고 맨 구석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인은 매번 플래시를 켜고서 현관에 들어섰다. 괜히 나는 빛을 비추는게 더 무서워서 빠른 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서고는 했다.


거기 누가 서있었을까. 그럴 일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구석자리에 세워둔다. 자꾸만 겁이 나는 상황을 가정한다.


요즈음 노쇠한 나의 뒷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꼭 그 자리가캄캄한 구석자리 같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생각이 나의 상상이란 것을 안다. 그런데 무슨 소용인가. 나는 내 말을 귀담아 듣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끔은 기도를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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