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늦잠은 예측할 수 없다. 늦게 일어나기로 마음먹는 것을 늦잠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지면 하루의 균형이 깨진다. 괜히 약속에 늦는 날에는 안 하던 실수를 하게 된다.
주말부터 외근이었다. 담당 중인 프로젝트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짐을 챙겨야 했으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면도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집을 뛰쳐나왔다. 현관문을 열 때 문 뒤로 우산함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화가 나곤 한다. 화를 참을 수 없을 때면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거나 발을 구른다. 그다지 좋은 해결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날씨는 무척 더웠다. 지난 며칠은 한 동안 선선했다. 무심코 긴 팔을 입고 나왔으나 햇살이 뜨거웠다. 얇은 셔츠가 축축하게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행사장은 얕은 언덕 위에 있었다. 짧은 길을 오르는 동안에도 등이 모두 젖어버렸다. 먼저 도착한 팀원이 걱정스런 말투로 말을 걸었다. 이따 결혼식 가야하지 않아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친한 형의 결혼식이었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식장은 은은한 불빛으로 가득 찼다. 하객들의 얼굴이 흐릿했다. 사람들 사이사이로 꽃냄새가 풍기고 멀리서는 구두굽 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홀로 빛나는 단상 앞에 형과 그의 아내가 서있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걸어 지나갈 때에 크게 박수를 쳤다. 어째선지 내 앞을 지나가는 형의 표정은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친구는 카메라를 들고 예식장을 바삐 뛰어다녔다. 결혼식을 치루는 하룻동안 벌어진 일들로 앨범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예식장에 가는 길에 친구는 문자를 보내왔다. 결혼식이 끝나면 맥주 한 잔하자는 말이었다. 전주에서 살던 친구여서 자주 볼 일이 없었다. 그러자고 대답했다.
실은 오늘 마쳐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애인은 내가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와 술을 마시겠다고 하니 그래도 되겠냐고 물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냐는 말이었다. 서운함이 느껴졌다. 그럴 만했다. 이럴 때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대단히 자의적인 판단이란 생각이 든다. 단지 살아가는 데에는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있을 따름이지 싶다.
막상 친구는 맥주를 다음에 마시자며 집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레 빈 시간이 생기자 김이 빠졌다. 마침 애인은 코인 노래방에 가자고 말했다. 역시 갑작스런 일이었다.
우리는 고작 몇 곡을 부르는 데에도 어떤 노래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윽고 축가를 불러보기로 결정했다. 결혼식에서 형은 자신의 축가를 자신이 불렀다.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목에서 쉰 소리가 커졌다. 우리는 천원어치의 노래를 부르고 부스를 나섰다. 고작 몇 분 새에 바깥은 늦은 저녁이었다. 밤길을 걷는 기분이 꽤 가벼웠다.
피로연장에서 밥을 먹으며 나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을 만났다. 한 친구는 자기도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오래된 연인이 있었다. 나는 지난 칠 월에 애인과 함께 살 집을 구하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집을 얻고 가구를 살 생각에 걱정이 컸지만 결국 어떻게든 치뤄냈다는 말이었다. 사실 그 말은 내 주변에 다른 어른들이 하던 말이다. 결혼하고 집 구하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다 어떻게든 된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우리는 갑작스레 집을 구하게 됐고 다행히도 두 사람에게 알맞은 자리를 구했다. 나는 이후로 계획 없이 치루는 일에 대하여 일말의 신뢰를 갖게 되었다. 때때로 어떤 일이란 긴 계획을 거두어야 풀릴 때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나와 그 지인은 집으로 돌아가며 서로의 일터 이야기를 나눴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종종 나는 굶어 죽는 상상을 한다. 알고 지내던 선배는 내 상상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요새 굶어 죽는 사람이 어딨냐며.
애당초 우리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끝내 그 시간이 도래하지 않고서 결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사람이란 기다리는 존재인 셈이다. 이런 말은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 내게는 사람이 늘 불안에 시달릴 운명이라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불안은 사람의 가장 정적인 상태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불안을 느끼지 않은 순간은 어느 때였을까. 아무래도 두 장면이 떠오른다. 친한 형이 신부와 함께 예식장을 걸어나가던 장면과 박수소리, 그리고 애인과 함께 코인 노래방을 나서며 마신 밤공기. 나는 그 지인에게 집들이를 오라고 말했다.그리고 밤길을 걸으며 어느 저녁에 친구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장면을 떠올렸다. 어느새 불안함이 가시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