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맞은편 집에 사는 남성은 아침이면 담배를 피운다. 늘 창틀에 재떨이를 올려 둔 채 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의 집과 내 집 사이는 비좁다. 아마 그의 창문은 붉은 벽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나의 창문은 그의 집보다 높은 곳에 달려있다. 아침이면 난 그를 쳐다보지만 그의 시선에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일어나서 곧바로 창문을 열기로 한 건 애인과 나눈 약속이었다. 이사를 하며 들여온 온갖 새 가구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오후 내내 느껴지지 않다가도 아침이면 머리가 아플 만큼 냄새가 났다. 애인은 잠에 깨는 게 늦었고 나는 일찍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이어서 애인이 눈을 뜨고 차가운 공기로 숨을 쉬었다.
환기를 시키는 것이 나의 아침 루틴이라면 맞은편 집 남자는 담배를 태우는 게 그만의 루틴인 듯했다. 내게는 좋지 않은 상성이었다. 열린 창으로 그가 뱉은 담배연기가 넘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담배냄새를 맡은 적은 없었다. 아침 기온과 건물 구조상의 이유인지 바람이 아래쪽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나는 입에 종합 비타민을 머금고 찬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아침체조를 한 뒤 체중을 쟀다. 남은 시간이 넉넉할 때는 아침식사를 차렸고 그러지 못할 때에는 서둘러 시리얼을 먹었다. 어느 날은 삼십 분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그러지 못한다. 별안간 잠이 늘었다.
언젠가부터 루틴에 관한 콘텐츠들이 눈에 자주 띤다. 그리고 대부분 성실하게 사는 법에 관해 다루고 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쪼개고 생산적인 활동들로 채워 넣는다. 이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요가를 하거나 글을 쓴다. 한낮의 루틴에 관한 콘텐츠는 드문 것 같았다. 아마 그 시간대에는 대부분 생업에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부터 그렇다. 점심을 거른 뒤에 산책을 하고 커피와 비스킷을 먹는 건 내 데일리 루틴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은 식곤증을 이겨 내기 위한 노력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하루에 한 시간 주어지는 자유를 즐기는 방식이기도 했다.
언뜻 동의하게 된다. 루틴을 만드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요새는 루틴이 틀어졌을 때의 내 모습에 관해 더 오래 생각한다.
애인과 다툰 건 손님 때문이었다. 애인이 손님을 부르는 날에 나는 잠시 집을 비워주기로 했다. 마침 본가에서 들고 올 짐이 있던 참에 나는 부모님을 뵈러 가기로 했다. 애인은 손님이 일요일에 온다고 말했으나 일요일을 며칠 앞두고서는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난 그 말이 납득되지 않았다. 이미 본가에 갈 날을 부모님께 일러 둔 참이었다. 애인은 어차피 본가에 가는 것이니 하루 전에 연락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몹시 불쾌했다.
그리고 곰곰이 되짚을 수록 불쾌할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나는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느낀다. 루틴이 깨지는 날이면 남은 일정에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루틴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소유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는 스스로의 삶조차 소유하기 어렵다. 오롯이 자기 삶을 사는 방식이 소위 자기개발 같은 것이라면 그건 꽤 씁쓸하다. 결국 이 또한 생산성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나태한 삶은 나다운 것일 수 없을까. 사람들은 그런 삶을 개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무수한 스펙트럼 사이에 게으르고 나태한 나의 모습을 끼워 넣고 싶지 않다. 자칫 늦잠을 자서 아침식사를 거르는 날이면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애인에게는 뒤늦은 사과를 했다. 우리는 함께 사는 법에 관해 공부하는 중이다.
며칠 전에 본 어떤 영상이 떠오른다. 그는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서 늘 밤을 새운다고 말했다. 반드시 정해진 날에 마쳐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꾸 딴청을 피우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막상 한 시간이면 작업이 끝난다는 것이다. 진작에 시작했다면 훨씬 이른 시간에 끝낼 수 있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미련함이 너무 괴롭다고 했다. 그 탓에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게 꼭 내 이야기 같았다. 나라면 그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계속 그렇게 살라고 말했을 것 같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고 조깅을 하거나 공부하는 삶이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저 우리는 세 끼 먹는 사람들로 태어났을 따름이다. 그러니 시작점은 초라해야 한다. 물론 나와 당신이 품은 가능성은 하염없다. 그러나 그 가능성에 시달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