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삶에 대하여 (2)

by 이보


이러한 문제를 기업의 이기심으로만 돌리기도 무리가 있습니다.

기업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달렸고,

기존 중심 기득권은 변화를 불편해했습니다.

노동시장의 경직된 구조 또한,

지역 분산을 어렵게 만든 요인일 수 있습니다.


이게 단지 어느 누군가의 악의라기보다는,

각자의 합리성이 쌓여 굳어진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좌와 우의 문제나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더 빨리 이동하는 사회일지,

혹은 이동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일지.


이제는 이 문제를 공론장에 올려놓고,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어디를 중심으로 삼을 것인지,

누가 어떤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회피하지 않고 토론해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삶.

그것은 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설계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가장 중요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청년들에게 단기 소비쿠폰을 준다든지,

청년을 위한다는 구호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게 할 수는 있을지는 모를지언정,

삶을 설계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쿠폰은 하루를 버티게 할 수는 있지만,

미래를 선택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비할 기회가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일자리,

예측 가능한 삶,

그리고 노력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뢰 가능한 구조에 있습니다.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받고,

그 위에서 스스로 노력하고,

사랑하며, 혼인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은,

어느 개인의 결심으로만으론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떠한 구조를 설계했는지,

그리고 사회가 어떤 선택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청년들에게 미래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회는 과연,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제대로 준비해 왔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사회만이,

다음 세대를 이야기할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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