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을 '중독'으로 부르면....

설탕세 이유에 대한 단상.

by 이보
image.png YTN, 2026. 2. 1. 자 국제면 "달콤한 중독과의 전쟁... WHO '설탕세'공식권고 캡처


기사를 읽다가 시선이 멈춰졌다.
‘달콤한 중독과의 전쟁’ 이라는 보도 제목 때문이었다.
전쟁이라는 말은 늘 그렇듯,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단어다.

누가 옳은지 묻기 전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요구한다.


그런데 정말 설탕이 중독일까?

중독이라는 말은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끊으려 하면 고통이 따르는 상태다.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고, 개입이 정당화되는 영역이다.


설탕은 어떤가.
나는 단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의사의 한마디에 커피에서 설탕을 빼고,
간식의 횟수를 줄였다.
불편했지만 가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왜 소비의 문제를 곧바로 질병의 언어로 옮겨놓는 걸까?".


이때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선택의 문제는 관리의 문제가 되고,
설득의 문제는 통제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전쟁’이라는 말이 덧붙는다.
전쟁이 시작되면, 토론은 사치가 된다.

하지만 설탕세는 전쟁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그렇다.


또한 설탕세는 치료가 되지 않는다.
약도 아니고, 처방도 아니다.
설탕세는 그저 가격을 바꾸는 정책이다.
비싸게 만들어 덜 사게 하겠다는 계산.
이건 의료의 언어가 아니라, 조세의 언어다.

이 방식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누가 더 큰 부담을 지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따져볼 수 있다.
그게 정책을 대하는 정상적인 태도다.


그런데 ‘중독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이 질문들은 점점 불편해진다.
건강을 위해서라는데,
왜 자꾸 따지느냐는 시선이 따라온다.
조세를 묻는 질문이
도덕을 의심하는 행위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국제기구의 권고가 더해지면,
생각은 더 빠르게 정리된다.
마치 이미 결론이 난 문제처럼.
하지만 권고는 권고일 뿐이다.
선택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더 정확한 언어가 필요하다.

image.png


나는 정책은 단어 위에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질문할 수도 있고,
질문을 멈출 수도 있다.

설탕세가 옳은지, 그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조세를 조세가 아닌 것처럼 부르게 되면,
생각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설탕을 ‘중독’이라 부르는 순간,
정책은 설명이 아니라 명령이 된다.

그리고 나는 이 단어들에서,
다시 한번 질문하고 싶어진다.

정말 이건 전쟁일까?

아니면 우리가 단어에 너무 쉽게
끌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이 옳은 걸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양성의 시대의 비슷한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