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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 Jun 12. 2023

전세제도 폐지론에 대한 비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에도 언급했듯이, 이번 글은 전세제도 폐지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작성하였습니다. 다소 긴 글이 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정부의 전세제도 개편에 대한 의지


최근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대차 3 법 개편뿐 아니라 전세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은 임대인들의 갭투자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전세 사기 문제 등으로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의 불안과 고통을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제도의 재정립은 단순한 금융제도의 개편이나 주택시장 안정화를 통한 자본이득 감소 등의 요인만을 고려하며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세제도는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제도는 단순히 금융 구조를 넘어 주거라는 문제에 대한 형태와 가치에 대한 것이며, 더 나아가 주택시장의 안정과 주민들의 생활 질 향상에 기여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전세제도의 재정립을 위한 논의는 이러한 전반적인 사안을 철저히 고려해야 합니다.



2. 전세제도의 역사와 세계적 분포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 깊숙이 뿌리내린 전통적인 제도로, 역사적인 기원을 통해 그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윤대성의 연구(2009)에 따르면, 이 제도의 기원은 고려시대의 '전당' 제도에 있으며, 이는 「고려사」 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Navarro(2008)의 연구에 따르면 전세제도와 유사한 계약 형태는 기원전 15세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Antichresis(안티크레시스)'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이 계약 형태는 수메리안 및 아카디안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의 기록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전세제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져 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입증합니다. 현재 법률적으로는 한국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미국(루이지애나 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에서도 전세제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전세제도가 특정 국가나 문화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사회에서 발견되는 주택 거래의 한 형태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전세제도의 폐지는 단순한 국내 법제 개편을 넘어 글로벌 교류와 인류 문화 역사의 연속성을 해치는 일일 수 있다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3. 현존하는 국내, 외 전세제도 및 비교법적 고찰


전세제도는 한국, 볼리비아, 인도 등 몇몇 국가에서 현존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마다 세부적인 형태와 실행 방식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도의 전세제도는 일부 지역에서 특색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벵갈루루 등의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2~3년의 계약기간 동안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지불하며, 이 기간 동안 월세는 없습니다. 계약이 만료되면 보증금은 이자 없이 임차인에게 반환되며, 부동산은 임대인에게 반환됩니다. 그러나 만일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면, 임대부동산은 임차인에게 양도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Kumar, S. 2001).


볼리비아의 전세제도는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라 불리며, 이는 한국의 전세제도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임대인은 임차인의 보증금을 받아 이를 투자하고, 계약 기간 동안 임차인에게 부동산을 사용하게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임차인은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으며, 계약 종료 후에는 보증금을 반환하게 됩니다.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는 계약 시 부동산 등기부에 반드시 등기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볼리비아에서 안티크레티코가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첫째로 은행 대출의 어려움과 비용 때문에 부동산 소유자가 보증금을 투자로 활용하게 되고, 둘째로 임차인이 월세로 지출되는 금액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Beijaard, F. 1995; Durand-Lasserve, A. 2006).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는 매우 안전한 임대차 계약 형태로 여겨지며, 전세 계약 시 반드시 부동산 등기부에 등록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임대인이 계약 종료 시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면, 임차인은 주택의 소유권을 자동 획득하게 됩니다. 이는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증금이 부동산 가치보다 적을 경우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 우리나라에는 채택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듯 전세제도는 유독 우리나라에 독특한 주거형태의 제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세제도의 운용은 국민의 주거와 직결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사회적 파급효과 역시 크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볼리비아 통계청, 2023. 6. 12. 확인>

https://www.ine.gob.bo/index.php/estadisticas-sociales/vivienda-y-servicios-basicos/encuestas-de-hogares-vivienda/ (위 그림은 볼리비아 통계청에서 다운로드한 자료 중 일부만 발췌한 그림입니다)



4. 전세제도 폐지론과 전세제도 유지의 형평성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의 유례없는 유동성 완화 정책은 주택, 주식, 암호화폐 등 다양한 실물자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주택 가격, 주식 가격, 그리고 암호화폐 가격은 전례 없는 속도로 급등하였습니다.


지난해부터 미 연준은 금리를 인상하는 기조를 유지하였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도한 유동성 완화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경제 효과를 그대로 반영하였고, 이로 인해 임금 상승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특히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대량 생산능력은 더 이상 물가 상승을 억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 몇 년간의 주택가격은 사상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 환경은 높은 전세자금대출 가능성으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레버리지를 활용한 갭 투자를 가속화하였습니다. 여기에 언론과 SNS 등에서 전문가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집값을 올리는데 기여하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못 살 것 같은 FOMO(놓칠 것 같은 두려움)’에 이끌려 소위 '영끌'을 동원해 주택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상황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반전되었습니다. 그 주된 원인은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정책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택 가격은 하락하고, 이는 당연히 역전세와 깡통전세 현상을 초래하였습니다. 이 현상은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하였고, 그때마다 그 현상은 집값 상승 문제보다 훨씬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국토부장관이 전세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언론이 전세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임차인들에게 안정적인 점유 형태를 제공하는 동시에, 자가 주택 소유의 발판이 되어 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주거 형태를 넘어, 주택 소유로 이어지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세는 사글세, 월세, 보증부 월세에서 자가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의 정점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주택을 소유하는 꿈을 실현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전세제도의 단점 중 하나는 임대인이 보증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지만, 이런 부담도 결국 자신의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수긍가능한 이유였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전세제도 폐지론이 대두된 것은 깡통전세, 역전세 등 일시적인 현상이 전체 전세제도의 문제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폐지론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언론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주택 가격 하락이 월세 선호 현상을 가속화시킨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2년 국토해양부에서 발표한 '2012년 주거실태조사자료'에 따르면 "2012년에도 월세 비중은 21.6%, 전세 비율은 21.8%로 거의 같은 수준이었고, 이때 월세 선호 현상은 저금리 기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2012년 당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2.75%로, 현재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이렇듯 전세제도 폐지론이나 월세 선호 현상은 잠시의 경제 상황 변화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 있으며, 전세제도의 전반적인 가치와 역할에 대한 고민은 엿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5. 결론


전세제도는 오랫동안 서민들에게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제공해 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주거형태에서 간단히 사라질 수 없는 주요 주거 제도이며, 이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단기적인 부작용에 대한 반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공정성과 형평성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전세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과 가격 폭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성(소득 수준, 인구정책, 도시밀집현상해소 등)이 고려된 수요에 기반한 공급정책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실성이 고려된 수요기반의 공급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와 주택가격의 폭등을 억제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무주택 수요자 또는 좀 더 나은 주거로의 전환을 꿈꾸는 수요자, 특히 젊은 청년들의 주거 불안정 요소를 해소함과 동시에 감소하는 인구정책에도 많은 도움을 주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 글은, 국토연구 제85권 (2015.6), "전세의 역사와 한국과 볼리비아의 전세제도 비교분석"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문헌정보 : Kim, Jin Yoo. "Comparative Analysis between Chonsei Korea and Anticretico in Bolivia." The Korea Spatial Planning Review 85, no. null (2015): 41-53. https://doi.org/10.15793/kspr.2015.8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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