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접은 순간, 자유가 내렸다

회색 구름이 도시 위로 내려앉은 오늘 출근길,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카페 앞 작은 물웅덩이에 네온사인이 번져 흔들리는 걸 보며, ‘비가 오면 늘 이런 풍경이었나?’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상하게도 어둠이 깔리면 빛이 더 뚜렷해지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빗줄기가 번져 주변불빛들이 일렁일 때마다, 눈앞의 장면이 슬며시 낯설어진다.

사실 나는, 태양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매일 햇살만 가득했다면 마음 한쪽에서 조용히 타오르던 작은 불꽃, 낙관, 인내, 호기심을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흐린 하늘 아래서야 비로소 그 불꽃이 환하게 드러난다. 빗소리는 내 안의 시곗바늘을 느리게 돌려놓고, 그 틈에 잊고 살던 생각들이 스며든다.

얼마 전, 우산을 두고 나온 채 집까지 걸어야 했다. 처음엔 어깨부터 파고드는 찬 기운에 움츠러들었지만, 어느새 ‘아, 어차피 젖을 거면 그냥 젖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찾아온 뜻밖의 해방감. 도망도 숨김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비에 맡긴 기분이었다. 인생에서도, 더는 피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오히려 새로이 숨 쉴 공간이 생긴다는 걸 그날 몸으로 알았다.

창문 너머의 세상은 빗물에 씻겨 맑아 보인다. 반짝이는 아스팔트, 물기를 머금은 나무 잎, 그리고 이따금 지나가는 버스의 흥건한 타이어 자국까지..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또 묻는다. ‘이렇게 바쁘게 달리는 이유가 뭘까? 혹시 가장 소중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 비가 계속 내린다면 잠시 우산을 접어 두자. 두 손이 자유로워진 만큼 마음에 자리를 내어주고, 빗물이 전해 주는 조용한 위로를 받아들이자. 어둠 속에서야 더 밝게 드러나는 불빛처럼, 우리 삶의 방향도 빗속에서 더 선명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