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숫자는 같아도 피해는 다르다

한·일 자동차 관세 격차

by 이보

미국의 새로운 관세가 한국과 일본 자동차에 똑같이 15%씩 적용된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정부와 일부 국민들은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선방하였다고 자축하고 있지만, 숫자가 같다고 해서 충격의 강도까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숫자의 의미보다는 그 속내에 담긴 의미를 면밀히 검표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본은 이미 미국과 재협상을 거쳐 실제 적용세율을 12.5% 선으로 낮춰 놓았다 (기존 2.5%를 더해 최종 15%가 된 것이니 협상은 12.5%로 된것이다). 반면 한국 자동차는 기존 0%에서 단숨에 15%로 뛰어올랐다. 결국 ‘같은 15% 인상’이라는 표면적 수사 뒤에 숨어 있는, 분모 자체가 전혀 다른 현실이 되는 것이다.



더 극명한 차이는 환율을 대입했을 때 드러난다. 3만 달러짜리 차량 한 대를 예로 들면, 일본차는 12.5% 관세로 3,750달러, 최근 환율 기준 약 570만 원, 56만 엔을 추가 부담한다. 한국차는 새롭게 15% 관세를 맞아 4,500달러, 즉 680만 원 또는 67만 엔이 한꺼번에 얹히는 셈이 된다. 차 한대당 차액은 750달러, 원화로 106만 원가량, 엔화로 11만 엔을 조금 넘는다. 숫자로만 보면 750달러 차이지만, 일본은 ‘10%대 초반에서 10%대 초반’으로 이동한 반면 우리는 ‘0%에서 15%’로 뛰어올랐다는 점에서 체감 충격이 단순 배 이상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생산 구조 차이가 겹친다. 일본 업체들은 판매 물량의 약 70%를 미국 현지 공장에서 이미 만들어 낸다. 따라서 관세가 붙어도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는 물량은 제한적이다. 반대로 현대차·기아차의 경우 미국 내 조지아·앨라배마 등 일부 공장이 가동 중이지만, 여전히 전체 생산량의 60%에 가까운 물량을 국내 또는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배로 실어 보내야 한다. 같은 관세율이라도 적용 대상 대수가 훨씬 많으니, 계산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4,500달러라는 추가 비용이 얼마큼 체감될까?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의 두 달치 실수령 월급에 해당한다. 이 정도가 차량 한 대마다 날아간다면 완성차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순식간에 잠식될 수밖에 없다. 제조사는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거나, 인센티브를 줄여 국내외 판매량 방어에 나서거나, 심지어는 구조조정과 생산기지 이전 같은 ‘고통 분담’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수출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와중에, 노란봉투법과 같은 반기업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나, 집권 거대여당의 의도를 어떻게 선해할 수 있을까?


결국 ‘한·일 모두 15%’라는 평면적 비교는 현실을 가린다. 출발선과 적용 범위가 다르면 결과도 극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숫자 놀음으로 포장된 안도감에서 벗어나, 관세 구조와 생산 전략의 차원이 낳을 파장을 직시해야 할 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비쿠폰의 어두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