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길, 대한민국은 예외일까
견제 없는 권력, 어디로 가는가.
나는 요즘,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불안을 느낀다. 이 감정은 단순히 정권이 바뀌어서 생기는 반감이 아니다. 내 우려의 뿌리는, 입법과 행정을 한 손에 쥔 절대다수의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다.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그 야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용산(청와대)에 들어앉은 순간,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정 질서의 핵심 원리가 무너질 위험이 현실화 되는듯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정권의 성향은 스스로를 ‘진보’라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장의 자율성을 줄이고 국가의 개입과 통제를 확대하는 법과 제도를 잇따라 내놓는다. 그 방향은 어쩐지 중국 공산당이 수십 년간 다져온 통치 방식과 닮아 있다. 반기업 정서에 기반한 법안들이 속속 발의되고, 기업을 잠재적 범법자로 취급하는 규제가 강화된다. 민간의 활력이 위축될수록, 국가는 그 공백을 채운다는 명분으로 더 깊숙이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질서를 내부에서 갉아먹는 방식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변화는 낯설지 않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중남미에서 손꼽히는 산유국이자 비교적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가 반기업 정책과 국가 통제를 강화하고, 사법부를 정치권에 종속시키자, 불과 10여 년 만에 경제 붕괴와 자유의 후퇴가 동시에 찾아왔다. 한때 ‘남미의 부국’이라 불린 나라가 국제 구호에 의존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역시 의회 다수파와 행정부가 결탁하고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면서, 헌법이 유지되는 겉모습 아래에서 전체주의 체제가 준비되었다.
나는 특히 사법부와 검찰을 향한 압박에 주목한다. 법원이 독립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게 압박하고, 심지어 검찰청 해체와 같은 발상까지 공론장에 올린다. 이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권력의 불법과 오남용을 견제할 마지막 방어선을 허무는 일이다. 사법부와 수사기관은 자유민주주의에서 권력 분립의 최후 보루다. 이들이 무너진다면, 법은 권력자의 의중을 포장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오래 지켜온 나라들의 공통점은, 권력 분립과 사법 독립을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행정부와 입법부가 치열하게 대립할 때도 대법원과 연방 법원은 정치적 독립성을 사수하려 애써왔다. 그 덕에 대통령도, 다수당도 법 앞에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역사는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잠식되어 간다고. 절차가 지켜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절차 속에 담긴 정신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다른 체제 위에 서 있게 된다. 나는 지금, 그 경계선에 서 있는 대한민국을 본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그리고 지키는 일은 언제나 힘든 투쟁이다. 그러나 그 힘겨움을 감수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피지배자가 된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묻는다. 우리는 과연 지금의 흐름을 ‘당연한 변화’라고 받아들여도 되는가. 아니면, 이미 잃어버린 것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길을 걷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