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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쿠폰의 어두운 그림자

30만 원어치 고기에 환호하는 사라들, 그리고 그 환호가 불편한 이유.

by 이보

SNS를 하다 보면 이런류 글들이 가끔 눈에 띕니다. “대통령님 덕분에 냉장고에 고기 30만 원을 채웠습니다. 집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참 훈훈한 장면입니다. 가족이 오랜만에 맛있는 고기를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 누가 보기에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장면이 매우 불편합니다.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통령 덕분'이라는 착시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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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민생지원 소비쿠폰은 일반 국민에게 15만 원, 차상위 계층에게 30만 원,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40만 원이 지급됐습니다. 문제는 이 돈이 어디서 왔느냐입니다. 당연하게도 대통령의 호주머니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낸 세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더 내야 할 세금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님 보너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언어는 순수한 감사라기보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표현에 가깝습니다.



물론 정책 취지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제외하고 소상공인 매장에서만 사용하도록 설계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방식은 너무 단순합니다. 세금을 걷어 쿠폰을 나눠주고 소비를 유도하는 구조, 유감이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현금을 살포하는 방식은 잠깐의 소비를 늘릴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인 투자나 생산성 향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결국 남는 것은 늘어난 국가부채와 미래 세대의 세금 부담입니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가 선의로 개입을 시작하면, 그 개입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일시적인 지원이 반복될수록 국민은 정부의 혜택에 익숙해지고, 스스로의 경제적 자율성과 책임 의식은 약해집니다. 정책이 지속될수록 경제는 효율성을 잃고, 사회는 보조금에 의존하는 구조로 굳어집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이런 구조가 아닙니다. 일회성 쿠폰이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 즉흥적 소비 진작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제조업의 혁신, 오늘의 고기 파티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경제 환경입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소득 재분배가 목적이라면 지속 가능한 복지 제도와 조세 개혁이 먼저일 것입니다. 경기 부양이 목적이라면 생산성 혁신과 산업 구조 개선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가 안정이 목표라면 에너지와 식품 공급망을 점검하는 것이 근본 처방이라 할 것입니다.



고기 30만 원어치가 주는 행복은 단 며칠에 행복에 불과합니다. 그 이후 남는 것은 늘어난 빚입니다. 경제학자 프리드만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 점심을 대통령님의 선물로 착각합니다. 그 착각이 길들여질수록 우리는 시민으로서 정책을 감시하고 평가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 대신 냉정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돈은 어디서 왔는가, 효과는 충분히 검증됐는가, 그리고 장기 전략과 연결되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이 대통령님 덕분이라는 간단한 표현을 정책 평가의 언어로 바꿔 줄 것입니다.


세금으로 마련된 쿠폰은 결코 보너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민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권리는 반드시 책임을 요구합니다. 오늘의 고기 파티가 내일의 세금 폭탄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면 우리는 '감사' 대신 '검증'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 글은 단순한 불평이 아닙니다. 왜 우리의 삶이 이렇게 일회성 쿠폰에 의존하도록 방치됐는가를 묻는 성찰입니다. 고기 30만 원 앞에서 환호하기 전에 그 돈이 어떤 가격표로 돌아올지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시민의 태도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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