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과의 협력은 약일까, 독일까.
정부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의 협력 확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언론은 수십조 원대 투자 규모를 강조하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블랙록은 그저 ‘돈을 잘 굴리는 회사’라는 이미지 이상을 갖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미래 성장을 견인할 파트너지만, 또 다른 시선에서는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비친다.
2024년 4월, 미국의 보호무역 성향 싱크탱크 CPA(Coalition for a Prosperous America)는 “월스트리트와 중국 공산당은 이제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CPA는 미국 내 산업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단체다. 따라서 주장이 편향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보고서가 지적한 몇 가지 사실은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출처 : https://prosperousamerica.org/wp-content/uploads/2024/04/CPA-BlackRock-Report-April2024-FINAL.pdf
첫째, 블랙록은 중국건설은행(CCB)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과 함께 합작사를 설립했다.블랙록이 최대 주주(약 50.1%), 중국건설은행(약 40%), 테마섹(약 9.9%))의 지분 구조를 갖고 있다. 이구조는 단순한 금융 협력이 아니라, 세계 금융자본과 중국 국가권력이 손을 맞잡은 구체적 사례로 제시된다.
둘째, 블랙록은 미국 재무부 제재 대상인 중국 군산복합체(CMIC) 기업 본체와 자회사 수십 곳에 투자하고 있으며, 중국 핵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에도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보고서는 지적한다.
셋째, 신장 위구르 지역의 강제노동 문제와 연루된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의회의 인권 입법 취지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넷째, 중국은 CSI(China Securities Index)라는 지수를 활용해 전략적 산업과 군사기술 관련 기업으로 자본을 집중시키고 있다. CPA는 이를 ‘전민 체제(whole-nation system)’라 부르며, 블랙록이 이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를 운용함으로써 그 흐름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고 주장했다. 외형적으로는 단순히 ETF나 인덱스 펀드의 운용이지만, 실제론 중국의 정책적·국가적 목표를 지원하는 구조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미국 의회 및 정책 전문 기관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미국 의회로까지 번졌다.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는 블랙록과 MSCI의 중국 투자 내역을 공식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 금융기관들이 중국 군사·인권 침해 기업에 수십억 달러를 공급했다는 분석이 공개되었다. 불법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사안이 공식적 검증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무게감은 충분하다.
※ 표에서 붉은색 칸은, 미국 내에서 거래 자체가 불법인 기업을 의미함. (즉, Treasury의 CMIC 리스트 포함 기업 14곳)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블랙록은 모든 미국 법률을 준수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의회의 자료 요청에도 협조하겠다고 밝혔고, 공시 문건에 중국 투자 위험을 반영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군산복합체나 핵무기 연계 기업 투자와 같은 구체적인 의혹에 대해서는 명확한 반박이나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 준수라는 방패 뒤에 서 있을 뿐, 논란의 본질에는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한국이 블랙록과 협력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글로벌 자본 유치, 일부 기술·운영 노하우의 이전, 세계적 운용사의 참여가 주는 신뢰 신호 등 긍정적 효과는 분명 존재한다. 더 나아가 민관 협력 모델을 활성화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놓쳐서는 안 될 위험도 있다. 외국 자본이 전략 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국내 정책과 규제 환경을 흔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블랙록의 자금이 다시 중국 전략산업으로 흘러들어 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치명적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
결국 블랙록과의 협력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세계 자본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기회를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경계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태도다. 단순한 투자 유치가 아니라, 투명한 감시와 제도적 장치를 갖춘 신중한 협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체제 경쟁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혼란의 시기다. 한국 역시 경제적 기회와 전략적 리스크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주) 해당글은,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를 토대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개인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힙니다.따라서 해당글에 대한 판단은 이글을 읽고 해석하는 각자에게 달려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