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아픔 앞에 서툴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에는 즉시 반응하곤 합니다.
누군가 웃고 즐거워하면 전염되듯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서툽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결국은 침묵하거나 엉뚱한 말로 상처를 덧내기도 하지요.
행복은 밖으로 환하게 드러나기에 함께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픔은 안으로 깊이 숨어 있기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웃음은 나눌수록 커지지만, 눈물은 각자 가슴속에서만 무겁게 흘러내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는 능숙하면서도, 아픔에는 어수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타인의 슬픔을 위안 삼습니다.
남이 겪는 고통을 보며 ‘나는 저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스스로를 달래거나,
그 불행 속에서 묘한 안도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본능적인 자기 보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이 단순히 내 위로의 도구로만 소비된다면,
우리는 결국 공감의 능력을 잃고 말겠지요.
요즈음 저 역시 그러합니다.
행복을 드러내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고,
그렇다고 슬픔을 나누고 싶은 용기조차 내지 못합니다.
마음은 점점 안으로 움츠러들고,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묵묵히 서성이는 나를 마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의 깊이는,
아픔을 어떻게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완벽한 위로가 아니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저 곁에 있어 주는 마음, 함께 울어주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위안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타인의 아픔 앞에서 어수룩해지는 그 순간을 허락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색함과 서툼, 때로는 잘못된 비교 속에서조차 우리는 조금씩 배우게 되니 말입니다.
행복은 나눔으로 깊어지고, 아픔은 곁에 머무름으로 가벼워진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