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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의 향연

누구를 위한 검찰 해체인가.

by 이보


답답한 마음에 몇 자 짧게 소견을 남겨봅니다.



검찰을 없애고 새로 만든 수사, 기소 체계의 흐름도를 보니, 가히 ‘절차의 향연’이라 할 만합니다. 언듯 보면 컴퓨터 하드웨어 판 같기도 합니다. 결국 경찰, 중수청, 공수처, 공소청 등등.. 기관 이름만 늘어났지, 국민 입장에서 남는 건 더 복잡해진 절차와 끝없는 기다림뿐이겠다 싶습니다.



555715148_24602445822774402_2189797170722135129_n.jpg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실 공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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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쯤 정치권은 인사권과 예산권을 손에 쥐고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관이 늘어났다는 건 곧 ‘줄 세우기’의 기회가 늘어났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겠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그 줄 세우기는 드러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드러난다 해도 절차적 정당성을 앞세우면 그만이겠지요. 그렇게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건은 지연시키고, 유리한 사건은 유연하게 풀어내는 것, 이보다 더 세련된 권력 놀음이 또 있을까 싶네요.



변호사들 얘기도 빼놓을 수 없네요. 절차가 복잡해지면 당연히 손이 더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손이 더 가면 수임료도 더 오를 수밖에 없겠지요. 소위 남의 불행 위에 밥벌이를 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은 이제 진짜 현실이 되나 봅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않는 변호사가 과연 있을까도 궁금해집니다. 세상이 어떠하든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그건 업계 생리를 모르는 순진한 이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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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하지요. 하지만 그 질문 자체가 너무 순수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 양심이 있었다면 이런 흐름도 자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양심은 어느 도덕책 한 켠에나 그나마 남아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27년간 법조 현장을 곁에서 지켜본 눈으로 보자면, 어쩌면 결론은 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도 할 수 있지요. 결국 절차는 화려해졌고, 권력자는 안심하며 웃고, 변호사는 노 저을 힘을 얻은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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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민은?


나약한 국민들이야,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저 절차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입장료만 꼬박꼬박 내야 하는 그야말로 호갱이 되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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