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어떤 선택은 사소해 보이지만, 또 어떤 선택은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늘 더 합리적인 길, 더 나은 이익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 숙고의 과정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진화해 온 이유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반미’와 ‘반중’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떠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건 단순히 외교정책이나 진영논리를 넘어선 우리 스스로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만들어내는 현실적 결과와 역사적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자유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법의 지배를 실현하려 애써온 문명은,
대부분 서구로부터 발전해 왔다.
물론 미국이 완벽한 국가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를 제도화하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며, 비판을 허용하는 사회 구조를 유지해 온 유일한 국가 중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반면, 중국 공산당 체제는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의 권력 집중과 사상 통제로 인해 더 이상 지속적 발전이 어려운 지점에 다다르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 호오(好惡)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사회의 보편적 진화 방향에 대한 관찰의 결과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 진화는 단지 기술이나 물질의 발전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신’이라 불리는 초월적 존재,
혹은 그에 준하는 도덕적 질서와 자유의 원리를 거역하지 못한다.
역사를 꿰뚫어 보면,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추구해 온 공통된 열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만약 그 자유가 형식적인 구호에 머물러 버린다면,
우리가 걸어온 투쟁의 역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묻고 지켜내야 하는 인류의 영원한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