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이 쉼 없이 반복되고,
먹고, 입고, 자는 일이 되풀이된다.
가끔은 이런 일상의 반복이,
도대체 인생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하루.
이 몇 시간이 나머지 삶을 지탱해 주는 시간임에도,
정작 이 시간을 가장 하찮게 취급하곤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 시간들에 비유되는 말들이 있다.
나는 언제쯤 이 일을 끝낼 수 있을까?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크게 벌 수는 없을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여유로울까?
나는 왜 그만큼 행복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또 어느 순간에는,
영화를 보며 웃고, 여행을 계획하고,
친구를 만나고, 술 한 잔 기울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사며 잠시 기분을 달래고,
이런 순간들이 삶의 행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결국 매일 9시부터 6시 사이의 시간에서 온다.
그 시간으로 우리는 삶을 꾸리고,
무언가를 지키고,
미래를 상상한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을 ‘고통’이라 부르고,
퇴근 이후의 몇 시간을 ‘행복’이라 부른다.
마치 삶을 절반만 자기 것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억울함과 원망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하면,
삶은 어느새 스스로의 통제에서 멀어진다.
감정이 하루를 지배하고,
하루가 삶 전체를 잠식한다.
니체는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화려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어떤 기준으로 하루를 바라보고,
어떤 의미로 내 시간을 견디며,
무엇을 위해 이 반복된 삶 속을 걸어가는지를 묻는다.
삶의 힘은
어디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고 단조로운 하루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나만의 이유’를 발견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이유를 찾는 순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시간도 고통이 아닌,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행복은 특별한 날의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뀐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미 그 답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것인지도 모른다.
[눈이 많이 내린 2025년 12월 24일 밤, 생각의 흔적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