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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아닌, 자긍심

by 이보

요새는 자존감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인다.

하지만 그 감정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대개 타인의 시선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존재감도, 우월감도 마찬가지다.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은 달콤하지만,

그 감정에 기대는 순간 관계는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누군가를 도울 때조차

알게 모르게 보상을 기대하곤 한다.

감사, 호의,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

그 기대는 관계 안에서 은밀한 계산서를 남기곤 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도왔지만 실은 내가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받아들이면,

그때 관계는 좀 더 가벼워지고, 마음 또한 자유로워진다.


상대는 도움을 받았다고 기억하고,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때 남는 감정이 자긍심이다.

인정받지 않아도 유지되는 감정.

타인의 반응과 무관하게 나를 지탱하는 소리 없는 확신.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나쁘지는 않지만,

자주 만난다고 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부담이 되는 만남은,

결국 관계를 소모시킨다.


그래서 요새는,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그 누군가가 잘되기를 기도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자존감을 붙잡고 흔들리는 삶보다,

자긍심을 지키며 조용히 서 있는 삶이

조금은 더 단단하다고 믿게 되는, 토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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