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9.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는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하여 신주발행에 대한 투자자의 사전 서면동의권을 규정한 약정을 무효로 판단하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 16민사부(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A사가 컴퓨터시스템 제조 판매회사인 B사를 상대로 “43억여원을 지급하라”며 낸 상환금 청구 소송에서 A사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B사는 2016년경 A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A사에게 신주를 발행하였고, 신주발행 당시 투자계약서에서추후 B사가 신주를 발행할 경우 A사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도록 하는 약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B사는 같은 투자계약서에서 위 사전동의권 조항을 위반할 경우 투자금 상환은 물론 위약벌을 부담하기로 약정했습니다. 이후 B사가 A사의 사전 서면 동의없이 2018년 8월에 26만주를 발행하자 A사는 상환금과 위약벌 명목으로 합계 43억여원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벤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계약 실무에서 일반적으로 벤처투자자는 투자 이후에도 회사의 일정한 경영상 의사결정을 관리감독하고, 특히 투자자의 이익에 반할 수 있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스타트업 기업의 중요의사결정에 관한 사전 서면동의권을 계약의 중요한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주식매수청구권, 위약벌 등 강력한 제재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까지 투자계약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투자계약은 벤처스타트업 투자계약 이외에도 ‘하이리스크’ 투자를 진행하는 경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왔고, 이러한 조항이 상법의 기본원리인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은 아닌 지에 대한 의문과 문제제기가 꾸준히 존재했습니다.
주주평등의 원칙이란, 주주는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는 그가 가진 주식의 수에 따라 평등한 취급을 받아야한다는 원칙으로서 상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인데, 벤처스타트업 투자 실무에서는 투자계약 체결시 투자자가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현실 및 기업정보가 부족한 초기 기업에 대한 하이리스크 투자라는 점에서 회사의 중요한 정책적 의사결정에 대한 투자자의 비토권을 일반적으로 투자계약서에 부여해왔습니다.
본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이러한 투자자의 투자계약상 사전동의권 약정에 관하여 “피고 이사회의 주요 권한을 특정 주주인 원고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주식회사의 기본 원리에 반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종류주식이 발행될수 있으나 그 유형은 법령이 정한 것으로 한정된다”며 “이를 허용할 경우 이른바 ‘황제주’와 같은 사실상 법이허용하지 않는 내용의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아울러 항소심 재판부는 위 판결의 이유에서 “(이 같은 약정을) 허용하면 재무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신주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회사의 기존 주주들을 불리한 지위에 처하도록 한다”고도 설시했습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비록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벤처스타트업투자계약서에서 일반적으로 규정해온 ‘투자자의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에 대한 사전동의권’ 조항의 효력을 무효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향후 벤처투자 실무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스타트업 투자계약의 방향성에 관하여는 사실상 벤처투자의 자금 상당부분을 공급하는 모태펀드 등 공적 펀드의 출자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정부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본 판결은 정부의 2022년 투자계약 방향성 설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는 모태펀드 표준규약 등을 통하여 사실상 ‘바람직한 투자계약’의 방향및 금지사항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정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서울고등법원에서 본 약정을 상법상 기본원칙은 물론 기존 주주의 열악함을 이용한 규정으로 판단하여 무효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판결 확정 전이라도) 투자계약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중소벤처기업부가 2022년 투자계약의 방향성 설정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투자자의 사전동의권에 관한 조항에 대한 금지여부를 모태펀드 표준 규약 등에 추가할 가능성도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VC들은 상장회사 등에 비하여 극히 정보가 부족하고 내부 체계를 갖추지 못한 초기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함에 있어 그 높은 리스크를 고려할 때 경영상 중요의사결정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함을 호소할 수 있으며 투자자의 사전동의권 조항이 사라질 경우 리스크 있는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자체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법리적으로는 이러한 약정은 기본적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상 회사와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투자사 사이에 체결될 수 있는 것이고, 회사가 투자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전동의권 조항을 위반하여 신주발행 등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로 인한 위약벌 등 계약상 책임은 별론으로 하고 그 신주발행 등 중요한 의사결정의 상법상 효과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를 상법상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당사자가 상고할 경우 대법원에서는 본 약정의 효력에 대하여 치열한 법리적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벤처스타트업 투자계약서에서 투자자의 사전동의권은
꼭 필요한 것이고, 정당한 것인가요?
투자사 입장에서, 또 피투자기업 및 창업가 입장에서 한 해 평균 200건 이상 투자계약서를 검토하고 투자사와 피투자사 간의 투자계약 과정의 논의에 참여하고 조언하는 전문가로서 저는 투자자의 사전동의권 규정이 상법상 기본원칙인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법리적으로 정당성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무적으로도 규정 범위가 지금보다는 좁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의 대법원 판례상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여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입니다. 주주평등의 원칙은 주식회사법의 기본원칙으로서 강행법규적 성질을 가지는 것이고, 따라서 상법에서 특별히 달리 정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정관의 규정이나, 주주총회 또는 이사회 결의, 대표이사의 업무집행 등이 주주평등의 원칙에 위반하는 경우에는 무효가 됩니다. 따라서 지분율과 무관하게 특정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만 회사의 중요결정사항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약정은 기본적으로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특히나 대부분의 투자계약서에서 투자자가 해당 주식을 제3자에게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경우 피투자 회사로 하여금 위 주식을 양수한 제3자가 기존 투자계약서에서 정한 투자자의 권리를 그대로 승계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별도 규정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사전동의권 규정은 단순히 높은 리스크를 부담하는 투자계약 당시의 약정 당사자 만이 아니라 해당 주식의 양도와 함께 계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더 통제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즉 극단적으로는 피투자기업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던 투자사가 보유 주식 일부를 경쟁사 등에 양도할 경우 해당 투자계약상으로는 그 주식을 양수한 경쟁사가 해당 피투자기업의 중요 의사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상황까지 야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은 당연히 피투자기업과 창업가에게 지극히 불리한 지위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벤처투자조합 등의 운용사(GP)로서 출자자들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VC로서는 피투자기업의 투자자 이익 저해행위를 감시하고 통제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겠지만 그런 목적의 조항을 현재와 같이 피투자기업의 ‘위법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넘어서 중요경영상 의사결정 자체를 투자사의 이익과 의사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형태로 만들어야 할 정당성과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금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사전동의권의 효력에 대한 판결이지만, 더 크게는 그 동안 대한민국 상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이해와 준수 없이 이루어져 온 투자계약 실무에 대한 사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즉 현재 벤처스타트업 투자계약 실무에서는 미국 VC의 투자계약서를 번역한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투자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일부 소수 로펌의 독과점 속에서 대한민국 회사법의 근본을 이루는 기본 원칙인 주주평등의 원칙 또는 자본충실의 원칙 등에 비추어 용납되기 어려운 규정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왔고, 투자자 절대 우위의 협상과정 속에서 이러한 조항의 사용이 사실상 강제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도 기준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불과 2~3년여전만 하더라도 일부 로펌이 표준이라고 게시한 투자계약서에 자본충실의 원칙상 인정되기 어려운 Liquidation Preference 조항이 들어가거나 투자사들이 이를 강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투자자의 사전동의권 항목으로 회사의 ‘이사회 및 주주총회 의결사항 일체’를 규정하고 이에 대한 수정요구에 대하여 투자철회를 협박하는 투자사들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정도면 회사에 투자를 하고 일부 신주를 받는 것인지 아니면 회사를 통으로 인수하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든 투자계약서들이 범람하였고, 이러한 조항들에 대한 상법상 문제 제기는 사법적 판단까지 나아가지도 못했습니다. 즉 지난 수년간 벤처투자 생태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벤처스타트업 투자계약 실무에서는 대한민국 상법의 법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그동안 상법의 원칙과 법리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투자자 중심으로 진행된 투자계약 실무에 대하여 이제는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사법부의 판단을 통하여 근본없이 이루어졌던 스타트업 투자계약 실무에 상법에 따른 사법적 판단이 이루어짐으로써 법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향후 당사자의 상고여부 및 대법원의 최종판결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상법 쯤은 가벼이 무시하고 일부 독점적이고 편향된 전문가집단의 의견에 따라 이루어진 투자계약 실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은 투자계약 실무를 담당하는 각 사람에게도 이제는 기존에 고민없이 이루어진 관행의 틀을 벗어나 상법의 근본원리에 따른 투자계약서에 대한 검토와 수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