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하여 영업비밀 보유자가 금지청구를 할 수 있으며,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손해배상책임도 물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제11조).
이때 영업비밀 침해행위에는 영업비밀을 부정하게 취득하는 행위, 부정취득한 영업비밀을 사용하는 행위 등이 포함되는데, 이때 영업비밀을 파일이나 서류 등으로 반출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업비밀의 취득에 해당할까요?
대법원은 과거 “영업비밀의 '취득'은 ① 문서, 도면, 사진, 녹음테이프, 필름, 전산정보처리조직에 의하여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작성된 파일 등 유체물의 점유를 취득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② 유체물의 점유를 취득함이 없이 영업비밀 자체를 직접 인식하고 기억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③ 또한 영업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바, 어느 경우에나 사회통념상 영업비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면 영업비밀을 취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1998. 6. 9. 선고 98다1928 판결 참조).
따라서 단순히 영업비밀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영업비밀의 ‘취득’에 해당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다가 퇴사하기만 하면, 이를 기억하고 있을 것으로 보아 영업비밀의 취득이 성립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하여 대법원의 구체적 판단기준이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하급심의 판단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과거 A회사가 자신의 연구원이던 B가 경쟁업체에 취업해 영업비밀을 유출하고 있다며 제기한 가처분신청에서 B가 A회사의 파일이나 서류를 반출한 사실은 없으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용액은 5가지 성분의 종류와 배합 비율을 기억만으로도 제조가 가능하다며 B와 A회사 간 경업금지약정에 따라 B는 경쟁업체로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반면 최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A회사에서 입찰 업무를 담당했던 C, D가 이후 B회사에서 입찰 업무를 담당하며 A회사에서 지득한 영업비밀을 사용한다고 하여 A회사가 B회사를 상대로 영업비밀침해금지 등 가처분을 신청한 사건에서, ① C, D는 영업사원이므로 입찰 업무 과정에서 제품과 관련한 영업비밀을 접했더라도 그 이해도가 높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② 비밀정보의 주된 내용인 입찰 가격과 입찰 조건에 기재된 구체적 수치를 C, D가 수개월 이상 기억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③ C, D가 일반인보다 기억력이 탁월하다고 볼 근거가 없으며, 해당 영업비밀을 기억할 만한 특별한 동기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들어 C, D가 영업비밀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이를 취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위 사례들을 통해 볼 때 법원은 영업비밀을 접한 자가 ① 해당 업무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 ② 영업비밀의 복잡성과 기억해야 하는 정보의 양, ③ 영업비밀을 접한 기간, ④ 영업비밀을 마지막으로 접한 시점으로부터 이를 사용하기까지의 시간적 간격, ⑤ 영업비밀을 기억할만한 특별한 동기의 유무 등을 기억에 의한 영업비밀 취득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서류나 파일 등 눈에 보이는 자료의 반출이 없었더라도 위 기준을 만족한다면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성립할 수 있음을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