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새로운 이야기를 드러낸다


고3 때, 나는 그저 막연히 멋있어 보여서 신문방송학을 선택했다.
그땐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 선택은 금세 후회로 바뀌었다.

전공 수업은 버티는 시간에 가까웠다.
이론은 이해되지 않았고, 리포트에는 흥미가 없었다.
학점은 늘 평범했지만, 딱 하나의 수업 — 신문제작론에서만큼은 달랐다.
그 수업에서 나는 빛나는 A+를 받았다.






기말고사 날, 교수님은 한 화가를 초청하셨다.
학생들은 차례로 질문을 던졌고,
그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시험이었다.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어떤가요?”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혼 후 작품의 변화가 있었나요?”

질문은 점점 진부해졌고,
강의실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분은 담담한 미소로 조용히 기다렸다.

그때 문득 생각이 스쳤다.
그분은 화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국전 출신 화가들.
그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그분은 언제나 가족의 지지와 응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달랐다.
나는 흙수저였다.
부모님은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벅차셨고,
공부나 진로에 대한 조언은커녕, 모든 걸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부러움과 함께 묘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 배경이 혹여라도 삶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손을 들었다.
“선생님, 가족 중에 유명한 화가 분들이 많으신데,
그런 배경이 오히려 선생님이 화가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으셨나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그걸 벗어나려고 10년 동안 붓을 잡지 않았어요.”

그 짧은 대답 안에는
외로움과 분투, 그리고 자기만의 화풍을 찾아가는 시간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교수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질문 하나로 그분의 인생을 기사에 녹여낼 수 있었고, 유일하게 전공에서 A+를 받을 수 있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날의 경험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질문은 새로운 이야기를 드러낸다.


시간이 흘러 변호사가 된 지금도,
질문의 힘은 나를 움직인다.
변호사는 질문으로 진실을 찾아내고,
사건의 실체를 구성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진실은, 때로 ‘당연해 보이는 것’의 반대편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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