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6 : 1-6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다가 다윗이 친 장막 안에 두었고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다 드린 후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관계에 대해 묵상해보게 된다.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했다.
번제(Burnt offering)
번제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 뜨리기 위해 드리는 목적이 있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나타내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제물을 태워 드리는 제사는 번제 이외에도 있지만 ‘완전히’ 태워 드리는 제사는 이것밖에 없다
번제가 오늘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 아닐까 싶다. 하나님의 궤를 장막 안에 두고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과 처음 행한 것은 번제였다. 우리의 죄, 즉 '자아'를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태워버리고 온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결단이 이 번제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화목제(Peace offering)
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이 평화를 얻도록 드리는 제사로(레 3장; 7:11-36) 번제를 통해 나의 자아를 태워버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이와 하나님 간의 평화가 회복되는 시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우선 '나의 죽음'이 있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평화는 없다. 가지는 모든 판단과 생각을 멈추고 일단 포도나무에 붙어야 한다.
'왜 주님 나와 함께 안 계신가요'를 부르짖기 전에 그 '나'가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
하나님의 계명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지만, 그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순서이다.
우리는 사랑의 원천(Source)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사랑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자가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안타깝게도 위험한 일이다.
인간의 사랑에 대한 노력이 또 다른 집착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보게 된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자 복수를 하는 남자의 이야기,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집착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자녀들의 이야기 등을 우리는 쉽게 주변에서 접할 수 있다.
인간은 사랑의 원천이 아닌 까닭에 주었으면 받아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포도나무에서 영양을 공급받는 가지는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아낌없이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
그 열매는 가지 자신의 것이 아닐뿐더러, 끝없는 영양이 또 공급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에게 사랑을 공급받아야 참된 사랑을 이웃에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
Give & Take가 아니라 말 그대로 흘러가는 사랑이다.
사랑의 공급처이시자 사랑이신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말씀을 다시금 되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매 순간을 살면서 내가 온전한 번제의 삶을 살고 있는지, 온전한 화목제의 삶을 살고 있는지, 여호와의 이름으로 모든 백성들을 축복하는 왕의 자녀의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주님 앞에 바로 서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