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요셉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그는 신랑으로서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신부와의 첫날밤의 기대를 포기해야 했다. 이미 아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아이를 임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서는 그 아이가 다른 남자의 아이가 아닐까 의심과 고민도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꿈에 천사가 나타나 그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임을 설명해 주었고 그는 믿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13-14절)
이제 아이가 태어났다. 꿈에 천사가 나타나 이집트로 떠나라고 한다. 언제까지? 기한은 없다.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부모, 형제, 친구들과 이별의 시간을 가질 짬도 없이 그는 그 밤에 바로 이집트로 떠난다.
히브리어를 하고 이스라엘에서 살아온 요셉에게 이집트란 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언어도 다르고, 기댈 지인도 없다. 자신이 만들어온 네트워크와 지식이 모두 무용화되는 곳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야 하는 곳이다. 그것도 기약 없이. 하지만 그는 믿었다.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요셉은 아빠이다. 갓난아기인 메시아는 아빠와 엄마의 보살핌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아기의 약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밥을 떠 먹여주며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이 아이가 나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는 믿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19-21절)
이제 이집트 타지 생활에 적응이 좀 되려고 할 때가 아니었을까. 타지에서 도움을 준 고마운 지인들과 정도 들고, 이제 직장도 새로 잡아 안정이 되어가려고 한다. 이집트의 생활도 막상 적응이 되어 보니 살만하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다시 말한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이제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어느 동네에 정착해야 할까?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지체 없이 들어간다.
그는 역시 하나님의 인도를 믿었다.
마태복음 2장을 끝으로 더 이상 요셉은 성경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라는 아이를 위해 임신한 여자를 아내로 맞고, 이집트라는 곳에서 타지 생활을 하고, 다시 정처 없이 이스라엘로 돌아온 그는 나이가 들며 그렇게 역사에서 조용히 퇴장한다.
하나님의 인도에 자신의 삶을 던지고, 자신의 삶을 메시아의 성장을 위해 던지고, 겸손하게 역사의 커튼 뒤로 사라진 요셉의 믿음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이 모여서 이루어졌다.
수많은 왕과 권세자들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요셉이란 한 청년의 이름은 마리아와 더불어 메시아의 아버지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인류에게 기억되고 기려지고 있다. 또한 그가 메시아를 성장시키며 누렸을 아버지로서의 기쁨과는 별개로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삶과 죽음 이후인 지금까지 온전히 보살피고 계셔옴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겸손한 요셉의 삶을 닮고 싶다.
믿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그를 보살피시는 하나님. 요셉이라는 한 청년의 믿음과 헌신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나의 삶을 믿음으로 그 물결에 던질 수 있는 겸손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요셉처럼 주님만 빛나시고 나는 조용히 커튼 뒤로 물러서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정결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