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렌스 May 14. 2018

사람들은 그들을

이사야 62 : 10-63:6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서 값을 주고 건져 내신 자들’이라고 부르겠고 너를 ‘찾은 성읍’, ‘버릴 수 없는 성읍’이라고 부를 것이다.


거룩한, 여호와께서 값을 주고 건져 낸, 찾은, 버릴 수 없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위의 네 가지 단어를 통해 묵상해 보게 된다. 


'거룩함'이란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원은 '탈퇴와 헌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죄악으로 부터의 완전한 탈퇴와 하나님의 얼굴을 향한 헌신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한다. 지금은 매일, 매순간이 거룩함을 향한 영적 전쟁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국 온전히 '거룩한' 백성이 되고 결국 죄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여호와께서 값을 주고 건져 낸

아침에 차를 타고 출근을 하며 이 구절을 보고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혹은 100명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 대가로 나의 아들과 딸을 대신 죽일 수 있을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누구든 나의 아들과 딸보다 더 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아니 오히려 방해만 되는 나를 건져내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을 값으로 치르셨다. 우리는 그분에게 그런 존재이다. 


찾은

'찾은'의 전제는 '잃어버림'이다. 잃어버렸다는 것의 의미는 '그분의 소유였음'이 전제이다. 누군가의 소유일 때만 잃어버림이 가능하고, 잃어버렸기에 찾은 것이 가능하다. 결국 찾은 성읍이란 애초부터 '그분의 성읍'이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처음부터 그분의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찾은 지금까지 주님은 그렇게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 그런 면에서 '새신자'라는 것은 없다. '돌아온 신자'만 있을 뿐이다. 


버릴 수 없는

가장 가슴이 먹먹해지는 단어이다. 

아무리 개차반이어도 결국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려고 해도, 부모는 그것이 자식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 죽임을 받아들인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식이 다시 돌아오면 다시 그를 받아들인다. 너무 사랑하기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에게 그런 존재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값을 치르고 건져내셨으며, 되찾으시고, 버릴 수 없다 말씀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 이웃 사랑을 논하기에 앞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먼저 깨닫게 하여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 사랑을 내 평생에 잊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매거진의 이전글 쉬지 아니할 것인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