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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Jul 05. 2018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사도행전 12 : 13-25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 하여 더하더라


입신양명(立身揚名).

공자의 효경(孝經)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라 한다. 

예전의 입신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가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 누구의 자식이라는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부모의 어깨를 으쓱거리게 하는 것이 효의 마지막 단계라는 가르침이다. 


즉, 입신양명의 성공 여부는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들이 손뼉 치고 환호하면 그것이 성공이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 그것은 실패임을 넘어 부모에게 조차 불효라는 가르침이다. 

입신양명의 기반에 깔린 철학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환호하는 대상이 되어야 성공이다"라는 것이다. 

결코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은 이와 정면으로 반대편에 서 있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마태복음 27장 23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대로 순종하여 살았고, 대중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소란을 피웠다. 

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명확한 불효이다. 그 부모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기는 커녕 살아있는 부모의 눈으로 자식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게 한 까닭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부모의 으쓱함과 대중의 환호를 얻지는 못했을지언정, 인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관점과 스케일은 그 시대 그 지역 그 상황에 속해있는 일부 사람들의 무리에 국한되지 않으신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칭찬은 복이라기보다는 독일 확률이 높다. 입신양명 자체가 십자가의 사람들에게는 크게 경계해야 할 올무인 것이다. 사람들의 높은 평가는 자아의 머리를 들게 하고, 교만은 반드시 나를 찌르는 칼 끝이 되는 까닭이다.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 했으며 초대교회를 박해하던 헤롯왕의 최후가 오늘 서술된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많은 군중 앞에서 눈부신 옷을 입은 헤롯은 연설을 하고, 각자의 필요에 의해 그를 아첨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신이다'라고 헤롯을 칭송한다. 실로 입신양명의 끝판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돌연 베드로를 구출했던 '주의 사자'가 등장해 헤롯을 쳐서 죽게 하고, 성경은 그 이유를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라고 설명한다. 


이와 정확하게 대조되는 장면이 사도행전 14장에 묘사된다. 

바울과 바나바와 루스드라에 가서 앉은뱅이를 고치는 기적을 일으키자 온 무리가 모여들어 그들을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신격화한다. 그때 바나바와 바울을 즉시 옷을 찢고 소리 질러 자신들에게 오는 영광을 즉시 하나님께 돌린다.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사도행전 14:11-15)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사건이 있은 직후에 유대인들의 충동을 통해 동일한 지역의 무리가 바울을 돌로 쳤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신이라며 제사를 하려고 하던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사도행전 14장 19절)


이것이 사람이고 군중이다. 오늘 칭송하고 호산나를 외치던 그 입으로 내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것이 사람이다. 너무나 연약하고 가변적이며 자기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기에 사람에게는 사랑할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사람들의 칭송과 비난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지 깨달을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하라고 명하신 주님.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평가만을 두려워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의 칭송과 비난으로부터 무관하게 살 수 있도록 하여주시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인생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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