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법은 조변 Sep 15. 2023

전략컨설팅과 변호사실무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늘에 찬란하게 떠 있는 전략을 땅으로 끌고 와 실행계획으로 만든다.

나는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이하 “대학병원”)의 비전ㆍ전략을 수립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대학병원은 곧 암센터와 심뇌센터가 있는 신관 개원을 앞두고 있었다. 신관을 오픈하면 1,300 병상 규모의 초대형 의료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진료ㆍ교육ㆍ연구를 모두 선도하는 중장기 성장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리 엘리오팀은 본관 지하 1층 회의실에 작업 공간을 꾸렸다.     


  

소송사무는 민법상 위임계약(제680조)인 반면, 컨설팅은 민법상 도급계약(제664조)으로 차이가 있다. 도급계약은 계약 한쪽 당사자가 일을 완성할 것을 약속하고, 상대방은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계약이다. 따라서 컨설팅계약은 발주기관의 ‘과업지시서’에 따라 해당 과업을 완성하여야 보수를 지급받을 수 있다(실무적으로는 선금과 잔금으로 나누어 받기도 한다).     


전략 컨설팅은 통상 착수보고, 중간보고, 최종보고의 3단계로 진행된다. 착수보고에는 해당 과업에 관한 환경분석(지리적, 경제적, 산업적, 정책적 차원의 분석 등), 과업범위 및 일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이 담긴다. 중간보고에는 발주기관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량적, 정성적 실적과 실무자 인터뷰를 통한 구체적인 성과와 원인 분석이 포함된다.


부서 간 실적 비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긴장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성과가 저조한 부서는 다 그만한 사정이 있다고 한다). 최종보고에는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 실행일정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비전 선포식’을 하기도 한다(임직원 모두가 비전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컨설턴트는 위 과정을 모두 담당한다. 그래서 보통 발주기관 내에 상주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고, 성과를 분석하며, 필요한 사람을 만난다. 몇 달 동안 발주기관으로 출퇴근하면서 발주기관의 면면을 살핀다. 버스노선과 주차장 상황도 체크한다. 고객의 접근성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발주기관에서는 기획조정실에서 컨설팅업무에 주로 관여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정과 배경을 알아봐 주기도 하고, 발주기관 내부적으로 정리해야 될 이슈를 정리해주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이렇게 보면, 전략 컨설팅이 매우 간단해 보인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깔끔하게 하나의 문제점에 하나의 원인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점을 정의하는 것도, 원인을 찾는 것도, 이를 위한 해결방안을 수립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끝없이 엑셀을 돌려보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밤새도록 유사 사례를 찾는다. 그렇게 논리를 세우고 합리성을 확보한다. 그렇게 고객이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한다.      


변호사실무는 구체적인 팩트에서 시작하여, 그 팩트에 대한 법적인 판단으로 끝난다. 그런데 전략 컨설팅은 추상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세부적인 실행계획으로 끝난다. 일하는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변호사가 컨설팅할 때는 시작점인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질문을 계속 해야 한다. 근거 법령은 무엇인지, 관련 인허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검토해야 한다. 하늘에 찬란하게 떠 있는 아이디어를 땅으로 끌고 와 냉철한 계획으로 바꿔야 한다.      


비슷한 선례가 있다고, 멋진 해외 사례가 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 '괜찮다더라'는 가장 조심해야 하는 말이다. 유사한 사례가 맞는지, 인허가 절차가 같은지, 근거 법령이 같은지를 체크해야 한다. 다 비슷해 보이는 땅과 건물이라고 해도 ‘국가소유’인지 ‘민간소유’인지에 따라 활용 절차가 완전히 달라진다. 부동산등기부와 토지대장ㆍ건축물대장을 확인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 기획재정부에, 경기도에 직접 물어봐야 할 때도 있다.   


그럴듯한 청사진을 진짜로 실행 가능한 일정표로 만들어 내는데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컨설팅펌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의 “기획업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새로운 사업, 새로운 정책,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모든 사안에서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간단히 '문제없다'는 결론이더라도 그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컨설팅하는 변호사는 ‘BUT Person’이 되기 쉽다. 1안은 이래서 어렵고, 2안은 저래서 어렵고, 3안은 애초에 불가하다고 하면, 분위기가 아주 정갈하고 고요해진다. 가능하면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제안하는 것이 좋다. 1안은 절차적인 보완을 하면 가능하고, 2안은 컨소시엄 형태로 하면 가능하고, 3안은 해당 사업을 제주도에서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제주특별법에 다양한 특례가 있음)는 식으로 의견을 제공한다면 조금 더 건설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변호사가 ‘아이디어’나 ‘사업계획’을 검토할 때에는 반드시 3가지 축(행정법, 민사법, 형사법)에 따라 검토를 해야 한다. 행정법적으로 구현 가능한지, 민사적으로 계약 체결 등의 절차가 필요한지, 형사적으로 문제 될 가능성은 없는지를 한꺼번에 검토하여야 한다. 사실 매우 귀찮고 복잡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없음”이라는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모두 검토해야 한다. 적법성을 확보하지 못한 전략은 고객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  


특히, 관련 법령에 따라 행정청이 인허가에 대한 ‘재량’을 갖고 있다면, 실무적으로 그러한 ‘재량권한’을 어떻게 행사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재량권한을 합리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관련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대학병원에서 입원병동을 증설하고 싶다면, 의료법 제33조 및 제33조의2, 같은 법 시행규칙 제26조에 따라 ‘시ㆍ도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후 ‘시ㆍ도지사’의 의료기관 개설변경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무적으로 ‘시ㆍ도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심의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병동 증설에 어떠한 심의가 있었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법 규정에 따라 가능해 보인다고 하여 실무적으로 다 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전략컨설팅을 하거나 기획업무를 하면, 자문 변호사로서의 경험치가 신속하게 쌓인다. 관련 산업에 대한 큰 시야도 생긴다. 나는 대학병원 컨설팅을 하면서 보건의료정책이 의료기관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생생히 파악할 수 있었다. 경영학을 전공하였거나, 전략 컨설팅에 관심이 있다면 과감히 도전할 것을 추천한다.



1. 변호사실무는 구체적인 팩트에서 시작하여, 그 팩트에 대한 법적인 판단으로 끝난다. 그런데 전략컨설팅은 추상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세부적인 실행계획으로 끝난다.

2. 변호사가 ‘아이디어’나 ‘사업계획’을 검토할 때 3가지 축(행정법, 민사법, 형사법)에 따라 검토를 해야 한다.

3. 전략 컨설팅을 하거나 기획업무를 하면, 자문 변호사로서의 경험치가 신속하게 쌓인다.

이전 15화 로펌 변호사가 왜 컨설팅? 떼인 돈 받아주는 그런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