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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Nov 16. 2024

기대하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영상을 마주할 용기.

아들과 함께 EBS 한국기행, KBS 다큐인사이드를 보고.


아들의 생일은 11월 22일이다.

오늘부터 아들 생일을 축하하는 '생일주간'이다.


어젯밤에 짐을 미리 쌌다.

아침 일찍 춘천으로 출발했다.


4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레고랜드.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엄마, 아빠, 아들은 신나게 놀았다.


아쉬운 마음을 갖고, 내일 더 열심히 놀겠다는 의지를 갖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정말 오랜만에 공중파 TV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다 함께 보게 되었다.


처음 본 프로그램은 스님들이 나오는 EBS 한국기행이었다.

아들은 스님이 왜 산속에 사는지 궁금했다. 스님은 왜 고기를 안 먹는지 궁금했다. 엄마, 아빠는 설명했다.


우리 집에도 TV가 있지만, 필요한 영상만 찾아보는 용도로 쓰고 있다. 여느 보통의 주말이었다면, TV를 보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님의 일상을 탐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KBS 다큐인사이드 "이웃집 아이들" 전체 보기 영상

- 쌍둥이 자매와 두 아빠로 이뤄진 특별한 ‘가족’

- 갈수록 다양해지는 가족, 우리는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그다음 같이 본 프로그램은 KBS 다큐인사이드 "이웃집 아이들"이었다. 아마도 재방송이었이던 것 같다. 미국 뉴욕에 아빠 2명(한국인, 일본인)쌍둥이 딸 2명이 한 가족을 이루어 사는 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의 소망을 이루며, 행복을 좇아 살아가는 아주 조금 특한 한 가정의 모습을 잔잔히 보여주었다. 그들도 보통의 부모였고 또 자녀였다.


출처: KBS 다큐인사이드 "이웃집 아이들" 미리보기

호사인 아빠와 엄마에게는 당연하고 익숙하며 쩌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은 처음 보았다고 한다.


아빠만 둘이 있는 가족을 처음 봤고, 출산 없이 가족이 된 것을 처음 봤단다. 그냥 조금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줬다. 냥 아주 조금 다를 뿐이라고.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며, 숨길 것도 아니어야 좋은 세상이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렇게 아들에게도 엄마, 아빠에게도 꽤 의미 있는 TV 시청 시간이었다.


유튜브는 알고리즘으로 봤던 영상의 후속 편과 비슷한 영상을 반복해서 추천한다. 넷플릭스도 쿠팡플레이도 그러하다. 공중파 TV는 그렇지 않다. 그런 것도 필요하다.


호텔 방의 큰 TV가 아니었다면, 스님의 생활도, 아빠가 둘인 가족의 삶도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함께 얘기하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라는 말을 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아빠에게도, 아들에게도 유튜브는 익숙하다. 원하는 영상을 언제나 쉽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안다. 그런데 그렇게만 살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진 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다.


때로는 아니 주기적으로는 구내식당에서의 식사와 같이 기대하지 않은 영상, 예상하지 않았던 영상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종영했지만 "다큐 3일"과 같은 영상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잔잔한 화면에서 함께 느낄 수 있는 큰 울림이 있었다. 능동적 선택이 아닌 수동적 노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아빠는 TV를 보면서 자랐다. 재미없는 신문도 잡지도 읽으면서 컸다. 그 시절에는 그것밖에 없었고, 그것이 몇 안 되는 재미이자, 여가이기도 했다.


아들은 그렇지 않다. 늘 자신이 기대하고 선호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의도 않게 낯선 콘텐츠를 마주할 순간이 거의 없다. 재미없는 영상을 견딜 인내력도 거의 없다.


아들이 조금 더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하나 보다. 익숙하고 안정된 삶도 좋지만, 때로는 다른 세상의 맥락, 다른 삶의 순간도 지켜보고,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커 갈 수 있도록 더 챙겨주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어떻게 챙겨줄 것인가?

고민이 이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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