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법은 조변 Dec 19. 2023

어른이 어린이보다 한심하게 느껴지는 장면들

공감한다. 믿는다. 안아준다.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무렵부터 친구처럼 지냈던 것 같다.

아들이 걸어 다니고 듣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들을 가급적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했다.


둘이 어린이집을 하원하면서,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이 즐거웠는지 늘 물어봤다.

아들은 항상 좋았던 것, 즐거웠던 것을 얘기했다. 그리고 친구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밤이 되어 큰방에서 같이 잘 때, 나는 항상 "오늘 하루도 멋진 하루였어?"라고 물어봤다.

아들은 항상 환하게 웃으며 끄덕끄덕했다. 매일이 그에게 그 하루가 멋지고 빛나는 날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가끔씩 기쁘고 좋은 소식이 있을 때 아들에게 말해주면, 아들은 자기 일인 양 공감해 주고 즐거워해줬다. "아빠, 표창받았어"라고 얘기해 주면, "표창은 날카로운데 안 다쳤어?"라고 되묻기도 했다. 아빠가 웃으면서 말하면, 그 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도 함께 기뻐했다.


"당신의 좋은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어떤 이해관계에 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으면 나도 좋은 것이다. 어른이들은 남의 좋은 소식도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한다. 혹시라도 나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지, 손해가 될 우려가 있을지 않을지, 손해가 될 우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지는 않을지. 어른이들은 남의 좋은 일이 좋은 일이 아닌 것처럼 심각해지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들은 나를 끝없이 믿는다. 아빠의 말이라면 다 믿는다. 아빠의 말이 최선인지 아닌지 따지지 않고 그냥 믿는다. "레고 오늘은 못 사주지만, 다음 토요일에 사 줄게"라고 말하면, 정말 다음 주에 사줄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 토요일이 되면 레고를 리마인드해 준다. 그전까지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8시 30분에 샤워하자"라고 얘기하면, 정확히 8시 30분에 나에게 샤워를 하자고 온다. 서로 얘기한 한 마디가 가벼울 리 없다. 말에는 원래 무게가 있는 것이고, 그 무게만큼 믿음이 생기는 것이니까. 핑계를 대지 않는다. 서로 약속을 했으니, 지키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히려, 어른이들은 '기한'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핸드폰에 입력하고, 다이어리에 쓰고, 알람까지 맞춰놓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지키지 못한 이유와 핑계를 찾는다. 지키지 못한 것은 자신인데, 밖에서 이유와 핑계를 찾는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부끄럽고, 핑계를 대는 것은 더 부끄럽다.

  



아플 때가 있다. 아들이 아프고 나면 엄마, 아빠가 이어서 아플 때가 있다. 아들은 걱정한다. 대충 걱정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빨리 낫기를 바란다. 한참을 놀다가도 아픈 아빠가 걱정된다. 아빠를 안아준다.


힘들 때가 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일이 줄어들지 않을 때가 있다. 밤에도 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고, 새벽에도 일을 해도, 일이 끝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들은 아빠를 기다려준다. 아빠랑 다시 축구하고 레고하고 놀 그때를 기다려준다. 바빠서 잠깐 아들을 만날 때, 아들은 아빠를 안아준다. 힘내라고 토닥토닥해 준다.


"아픈 건 어쩔 수 없는데, 그래도 일은 마무리할 수 있죠?", "정신없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제때 마무리할 수 있겠죠?"라고 되묻는 사람은 어른이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힘들다는데 그것은 배경일 뿐이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일을 시작하는 것도 사람이고, 마무리하는 것도 사람이며, 그 사람이 아프고 힘든 것이다. 어린이에게 참 어색한 장면이다.

 



"중요한 거야"라고 하면 아들은 진지한 표정부터 짓는다. 보고서가 있는지, 읽을 자료가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중요한 말을 들을 준비를 한다. 어른의 말로 "경청"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말을 듣고, 스스로 고민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보고서 없이는, 읽을 자료가 없이는 도저히 말을 들을 수 없는 어른이 아주 간혹 있을 때가 있다.

"왜 읽을 자료 없이 만나러 갔을까?"라는 질문에 아들은 "급하고 바쁘니까 그렇지. 바쁜데 어떻게 종이에 써가겠어?"라고 답한다. 그렇다. 중요한데 급하니깐, 종이 없이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종이 없이는 만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아들은 "듣는 사람이 더 잘 들으면 되잖아."라고 한 마디 덧붙인다. 그렇다. 종이 없이 만나러 온 사람에게는 그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듣는 사람도 조금은 더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어린이인 아들과 친구같이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어른이들의 세계가 가끔 낯설 때가 있다. 조금 더 믿어주고, 조금 더 공감해 주고, 조금 더 배려해 주면 좋을 것 같은 아쉬운 상황을 목격할 때도 있고 직접 경험할 때도 있다. 고민스럽다. 어느덧 어린이와 친구가 된 어른이 '어른이들의 세계'를 살아가려니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좋은 노래 모음글 [조변명곡]을 소개합니다.

https://brunch.co.kr/@lawschool/79


제가 쓰고 있는 '나만 몰랐던 민법'을 소개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iknowmb



매거진의 이전글 출퇴근길에는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게 더 편하지 않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