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길바닥 위의 계급

2016 유럽의 기억

by 사흘된 망고

2016년 여름,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하지 않는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저 멀리 유럽으로. 동생과 2주 정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3개국을 다녀왔다. 벌써 3년 전이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때 내가 유럽을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싶기도 하고 또한 이번 여름에도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여름에 다녀와서 느낀 점과 비교하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유럽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고, 그래서 유럽 관광에 대해 알고 싶어 기행문을 찾아보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유용하지 않은 글이다. 나는 개선문의 웅장함에 압도된 기억보다는 버스를 탔을 때 보았던 파리의 유치원생들이, 영국 궁전의 근위병들보다 궁전 앞 공원에서의 개들이 더 기억에 남았으니까. 이 글은 유럽 길바닥 위의 기억의 조각들을 모은 글이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로 통합하자면 ‘계급’에 관한 글이다.


기행문에서 ‘계급’이 주제라니. 굉장히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겠다. 나는 ‘사회적 계급’에 관심이 많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귀족, 노예와 같은 계급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들을 가지고 있다. 계급의 기준은 하나가 아니다. 자본일 수도 있고, 명예 또는 학력일 수도 있다. 계급의 기준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분명히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6년 6월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전공수업으로 ‘계급론’을 들었다. 아마 그 영향도 클 것이다. 한 학기 동안 사회적 계급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고, 생각한 후 본 유럽은 분명히 다른 시야를 가졌을 테니 말이다. 비유하자면, 계급이라는 셀로판지를 덧댄 안경을 쓰고 유럽을 봤달까. 아름다운 유럽의 관광지도 나는 많이 보았지만, 그 관광지를 배회하고, 관리하고, 걸어 다니는 수많은 유럽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계급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파리


유럽에서의 나의 첫 길바닥은 파리였다. 숙소가 중심가와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많이 타고 다녔다. 지하철을 탔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흑인이 굉장히 많다”였다. 프랑스에 흑인이 많이 사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체감상 3분의 1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나의 예상보다 굉장히 많았다. ‘프랑스에 흑인이 많이 산다’로 파리를 표현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파리의 구성원은 흑인과 백인이다.’ 이렇게 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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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관광지에서 흑인을 보고 싶다면 관광지 안에서 찾지 말고 밖에서 찾아야 한다. 파리의 대표적인 기념품이 작은 에펠탑이 걸려있는 열쇠고리인데, 파리의 어떤 관광지를 가든 흑인들이 팔에 열쇠고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파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내가 의문스러웠던 점은, 가난하고 힘든 파리의 시민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도 있을 텐데, 왜 길거리에서 열쇠고리를 파는 사람은 흑인밖에 없는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유럽의 노숙자는 오히려 백인이 많이 보였다. 흑인에게 파리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그 답을 어렴풋이 오르세 미술관에서 알 수 있었다.

파리하면 루브르 박물관이 먼저 떠오르지만, 오르세 미술관도 그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고흐의 자화상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걸려있는 곳이 오르세 미술관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항상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 가면 밖에까지 입장 줄을 서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오르세 미술관 바로 앞에는 작게 음료를 파는 가판대가 있다. 딱 한 개가 있고, 작은 박스 형태로 커피를 파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작은 가판대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박스의 형태가 열려있고 카페가 아닌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흑인이 서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 ‘안’에 들어가면 백인들이 앉아서 입장표를 끊어주었다. 이것은 단지 우연인 걸까? 오르세 미술관만의 일일까? 추우면 춥게, 비가 오면 그 날씨의 영향을 그대로 받으며 일하는 오르세 미술관 ‘밖’의 일자리는 흑인이 가지고, 날씨의 영향 없이, 에어컨 혹은 히터 옆에서 앉아서 일하는 티켓 판매원 일자리는 백인이 한다는 것은 사회적 차별이 만든 계급이고, 그에 따른 일자리 배분의 결과는 아닐까.




2) 런던


파리 다음으로 간 나의 유럽 길바닥은 런던이었다. 파리와는 다르게, 런던에서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 많다.’였다. 히잡을 쓰고, 아랍권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런던에서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빨간 버스에서 유모차와 함께 있던 히잡을 쓴 아주머니의 기억이다.

런던에서는 지하철보다 런던의 상징인 빨간 버스를 많이 타고 다녔다. 이동수단으로 편리하기 때문도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많이 없는 2층 버스가 신기해서 많이 타기도 했고 2층 버스 맨 앞자리에서 보는 런던의 풍경이 좋았기 때문도 있다. 기차로 도착한 런던에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가장 먼저 탄 것도 빨간 버스였다. 이 빨간 버스에서도 물론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의 첫날, 우리는 캐리어를 들고 숙소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2층이 아닌 1층에 앉아있었다. 빨간 버스는 2층에 주로 좌석이 많고, 1층에는 장애인과 유모차를 위한 공간이 넓게 있어 좌석은 적은 편이다. 내가 탔던 버스에는 히잡을 쓴 아주머니가 어린아이 한 명과 유모차에 누워있는 더 어린 아기를 데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버스를 탄 지 얼마 안 있어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 보려 유모차도 흔들고 공갈 젖꼭지도 줘보았지만 아기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5분, 혹은 10분쯤 지났을까. 아이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쯤 되니 “애 좀 어떻게 하쇼!”라는 한국 아저씨의 외침이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버스에 있는 누군가도 아무도 한소리 하거나, 껄끄럽게 쳐다보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보건대, 아기가 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머니가 노력한다고 모든 아이가 울음을 그치는 건 아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나 날카로운 눈치로 그들을 쳐다봤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운다는 그 사실만으로. 하지만 그 버스에서는 아니었다. 아이가 우네,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멈추는 것.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내지 않는 그 사소한 배려가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을 버스에 타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런던에서 버스를 타면서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거의 모든 버스에서 유모차 1대씩은 있을 정도로 말이다. 버스에서 유모차를 보기 힘든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사실 버스뿐만이 아니었다. 관광지를 가면 나는 유모차도 휠체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런던이 우리나라보다 유모차를 많이 사용하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많이 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에 대한 인식이 높은 것이다. 유모차가 버스에 올라탈 때 뒷사람인 내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아무렇지 않고, 휠체어를 위해 관광지의 계단 옆에 경사길을 내는 제도들이 뒷받침될 때 그들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 런던에서 많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보면서 나는 왜 지금까지 국내여행을 다닐 때, 버스를 탈 때 유모차와 휠체어를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부끄러웠다. 물론 우리가 그들을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는다. 휠체어가 버스를 타려고 하면 거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유모차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아이 어머니와 휠체어를 끌어야 하는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다. 그들은 사회적 계급이 낮다. 자신의 마음대로 무엇을 할 자유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제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단순히 ‘버스는 그들을 거절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만으로 그들이 자유롭다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저상버스처럼 버스가 휠체어에게 편안할 때, 휠체어가 출근시간 버스에 올라탔을 때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을 때 그들은 버스에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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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계급의 문제점은 계급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계급이, 사회적 차별을 만든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차별을 줄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언젠가 누군가의 아이의 부모가 될지 모르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기에. 또한 나는 흑인과 결혼해서 가족이 될 수 있기에. 그래서 사회적 계급은 지금 계급이 낮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미래이다.


차별을 발견한 오르세 미술관에서 나는 또 다른 미래를 보았다. 유치원에서 견학 온 열명 남짓의 아이들이 두 명씩 한 줄로 손을 잡고 미술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 중에는 머리가 곱슬한 흑인 아이도 있었고, 눈이 파란 백인 아이도 있었고, 나처럼 동양스러운 외모의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인종’이라는 말이 원래 없었던 단어인 것처럼, 그들은 그냥 친구였고, 단지 손을 잡고 함께 웃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는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내가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유럽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았다. 샤이오 궁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그곳은 에펠탑이 잘 보여 사진 찍는 명소였다. 밝게 웃는 나의 뒤에 에펠탑이, 내 옆에 휠체어가 있었다. 내가 경복궁에 놀러 가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많은 휠체어들이, 유모차들이 내 옆에 찍히는 미래를 바란다. 마침.


사진 출처: 같이 여행간 나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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