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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Feb 14. 2023

노련한 뱃사람이 되는 과정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p.31



직업도 있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진로를 고민한다. ‘진로’의 사전적 의미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니까 직업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계속해야 하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직업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일의 방향성에 대한 문제로 바라보면 어쩌면 일을 그만둘 때까지 해야 할지도.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가를 고민했다. 변호사업무 중에서도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사유한다. 오랜 경험과 고민 끝에 젠더폭력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정했다. 지금의 결정이 확고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 잘 가고 있는 걸까, 길을 가면서도 스스로에게 수십 번 되묻는다. 뒤돌아보고 곁눈질할 때도 많다.      


그래도 확실한 건 묵묵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묵묵히 버틴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 ‘현재’가 있기에 ‘내일’을 위해 또 버티고 있다. 힘들어도 이 시간을 잘 보내면 조금은 나아진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지나고 보면 의미 없는 일도, 버린 시간도 없을 거라는 믿음이 또 이 시간을 버티게 한다.     


나는 유독 ‘과정’을 찬양한다. 뚜렷한 결과를 뽐낼 수 없어 과정에 집착하는 거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신기하게도 정체된 것만 같은 과정도 쌓이고 쌓이면 결과물이 나온다. 박웅현 작가도 책 《여덟 단어》에서 "옳은 선택은 없다.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정신과 의사인 윤홍균 작가 역시 책 《자존감 수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옳은 결정’이란 없다. 어떤(what)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정한 후에 어떻게(how)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라고. 어떤 선택이나 결정이든 안 하는 게 문제이지, 일단 무엇이든 하면 그 이후에는 그 선택이나 결정을 옳게 만들면 되는 일이다. 이 과정에 필요한 건 묵묵히, 꾸준히 버텨내는 힘이다.


어떤 선택을 했음에도 끊임없이 잘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가늠하는 것 또한 내 선택이 결국엔 옳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빚어낸 결과는 틀릴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노련한 뱃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과 사유의 시간들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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