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좋은 일들만 생길 수는 없습니다 6

Episode 6 – 사랑에 실패 (2)

by 안갑철 변호사

⑦ 너 그럴 줄 알았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 학원 셔틀버스에서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하여 저는 그 학원을 다니지 않았고, 그해 겨울 즈음 다시 다닐 계획이었습니다. 그즈음, 제 친구가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였습니다!


저는 고민 끝에, 제 친구 녀석에게 고백했습니다.


“야, 나 사실 ○○ 좋아해.”

“ㅋㅋㅋㅋㅋㅋㅋㅋ 너 그럴 줄 알았다.”

“...?”

“나 이제 안 좋아해.”

“...?”

“나, 다른 사람 좋아해.”


하지만 역시 고백도 못 하고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해 겨울 조금 친해질 수 있었지만, 고백할 수는 없었습니다.


⑦ - 2 속편: 이 친구의 다른 이야기들


㉠ 기숙사 독서실 책상에 한양대학교 법대 사진을 붙이다


그 친구는 여고에 다녔는데, 공부를 엄청 잘했습니다. 당연히 좋은 대학을 갈 것으로 생각했기에, 저 역시 뒤처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 등장하는 시즈쿠와 세이지를 꿈꿨습니다.


그 친구를 좋아하니까, 최소한 그 친구에게 고백이라도 제대로 하려면 저 역시 최소한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그게 대학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늦은 가을 즈음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뭔가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그냥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그 친구에게서 찾았습니다.


‘나도 뒤처질 수는 없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분명하고 확실했던 저는, 제 주제를 알았기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 사진을 컬러로 출력하고, 그 밑에 그 친구 이름을 적었습니다.


‘For ○ ○ ○’


비록 한양대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저 나름대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는 했으니까요.

㉡ 화이트데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또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학생회 후배에게 부탁했습니다.

“○○야, ○○여고에 ○○○가 두 명 있거든? 거기서 작년에 ○○가 몇 반인지 좀 알아봐 주라”

.

.

.

“형님, 3학년 ○반 이래요.”

.

.

.

2만원을 건네주며,

“○○야, 제과점에서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예쁜 사탕을 사다줘.”

.

.

.

“형님, 여기요, 아 진짜 쪽팔렸어요.”

“미안해, 부탁 하나만 더 하자.”

“...?”

“이거, 퀵으로 좀 보내줘.”

“아, 형!”

“마지막이야.”


저는 사탕 꽃다발에 영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줬습니다. ‘사람들은 너를 엽기적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이름은 쓰지 않고 ‘JUSTICE FOR ALL’이라는 별명으로 보냈는데, 제가 쓴지 알았다고 해서 매우 기뻐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열정이 대단했네요.


㉢ 너, 양미라 닯았어


저는 정말 열심히 해서 제가 바라던 대학에 수시 1학기로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왜? 뭔데? 사귀어 달라고?”

“아니, 너 양미라 닮았어.”


그 친구가 조금 당황하긴 했었는데, 저는 왜 그랬을까요. 그 자리에서 저는 그 친구의 대학 수시 원서를 받았고, 마감일에 직접 해당 대학에 그 원서를 직접 내주기도 했습니다.


㉣ 그래도 다른 여자를 만날 수는 없었다


저는 정말 그 친구를 좋아했습니다. 수시 1학기 합격 카페 자기소개란 이상형에 버젓이 ‘그녀’라고 쓴 적도 있습니다.


수시 1학기 합격하고 대학교에서 마련한 예비대학 프로그램에서 정말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용기 내지 못했던 때가 아직도 아쉽습니다. 사귀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한 순애보였습니다.

생일을 맞춰서 선물을 보내주기도 할 만큼, 큰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따로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진전도 없었습니다.


㉤ 재수, 그리고 재회


그 친구가 재수를 결정했을 때, 따로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에는 또 그만큼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서울로 올라갔고, 그 친구는 재수했고 1년 뒤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교양 수업 한 개를 같이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인기녀였습니다. 봄이 되었을 무렵, 그녀에게는 대학생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단념했습니다.

㉥ 인연이 아니야


공익근무 중 서울로 올라와 그녀를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참 바보 같게도,


“손 한 번 만져봐도 돼?”

라고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틀렸습니다. 그 친구는 예전에,


“나는 편지로 고백하는 거 진짜 싫어. ○○이가 괜찮은 아이긴 했는데, 편지로 고백해서 난 싫더라.”라고 나름 힌트 준 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내 비추는 것은 상관없지만, 고백은 편지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싫어, 내가 예전에 이야기했었잖아, 나 편지로 고백하는 거 엄청 싫어해.”

“아……. 나, 예전 꿈이 너랑 손잡고 같은 캠퍼스 걷는 거였어.”


어쩌면, 저의 그런 말이 고백으로 비추어 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거절했고…….


캠퍼스를 거닐 때, 그냥 말없이 손을 잡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요?


그저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제가 필요로 할 땐 취업 준비로 바빴고, 제가 신림동에 있을 때 역시 한 번 와주지 않았던 사람. 사법시험 1차 합격했을 때에도, 2차 합격했을 대에도 만났지만, 역시 제 짝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기만 해서, 조금이라도 받고 싶었던 마음, 서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그녀의 생활 습관 중 하나가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저와 그냥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⑧ 코치 받는다고 달라지지 않더라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교 학생회 부회장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학교 학생회와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친구였는데,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성 친구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고, 어떻게 고백하면 좋을지 상의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제게 자신의 사례를 들어 조언해줬습니다.


“내가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는, 나한테 문자로 고백했어, ‘새해에는 너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이런 내용이야.”


용기를 얻은 저는 어쨌든 ‘새해에는 너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고,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자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친구의 경우 그린라이트였지만, 저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들이댄 것 같습니다.


⑨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깔끔한 남자


이 와중에 저는 친구의 다모임 프로필에서 다른 친구의 사진을 봤는데,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귀여웠습니다.


‘저 친구 참 귀엽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기회가 되어 그 친구를 알게 됐습니다. 그 친구‘B’는, 위 ①에서 6학년 때 좋아했던 친구‘A’의 친구였습니다.


친구 A를 통해 친구 B와 같이 놀기도 놀았습니다. 저는 새해가 밝아지자 그 친구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그 말.


“우리, 그냥 친구하자.”

라는 말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너는 서울로 대학가잖아.”

거절하기 좋은 명분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그 말을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명분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평소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깔끔한 남자’가 좋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깔끔한 남자’


어디, 그게 쉽습니까?


⑩ 백일동안 – 나는 바보입니다


이어서 바보 같게도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앞서 말한 친구(A, 위 ①에서 좋아했던 친구입니다)를 좋아했습니다. A와도 많이 놀기도 했습니다. 제가 착각할 만도 했습니다. 그 친구가 가장 강조했던 게,


“너, 남녀 간 친구가 되려면 최소한 호감이 있어야 된다는 거 알지?”

라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은 이성적(異性的) 호감이 아닌 인간적(人間的) 호감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재수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괴로워도 했습니다.


대학에서 사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노량진에서 재수하고 있고, 제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미팅을 나가서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고백도 늦췄습니다. 이승환의 〈백일 동안〉 처럼 고백할 날을 줄여가며 그날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왜 〈백일 동안〉이냐고요? 가사가 이렇습니다.


“여자친구는 설마 아니겠지

아직 이 얘긴 비밀로 했는데

다른 사람은 이럴 때 어떨까

100일의 시간동안

하루하루 줄어들어

삐삐로 오는 이상한 숫자

어젯밤은 2였어

누가 고백을 하려나

나쁜 일만은 아니길 바래

오늘밤은 1이야

자꾸만 궁굼해지네

100부터 줄어든 숫자

참으면 알겠지

숫자의 주인을

어렵게 잠들었지만

여자친구는 설마 아니겠지

아직 이 얘긴 비밀로 했는데

그때 울리는 기다린 메시지

한 번만 만나달래

부끄럽기도 하겠지

100일동안 날 기다렸으니

하는 짓도 예쁘네

말론 용기가 없는지

편질 남기고 사라진 그녀

웃으며 뜯어보니

아냐 아냐 이건 아냐 왜그랬어 왜 그랬어

하늘이 캄캄해지네

낯익은 글씨 앞에서

변명을 해야해 애인이 있다며

설득해보려 했다고

힘이 빠지는 이유는 왜일까

정말 난 다른 사람을 원할까

다른 사람은 이럴 때 어떨까

100일의 시간동안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제 전화번호를 가리고 100이라고 보내고, 10일 있다가 90이라고 보냈습니다. 80, 70, 60, 50, 이렇게 숫자만 보냈습니다. 40, 30, 20, 10. 9. 8. 7. 6. 5. 4. 3. 2. 1. D-day


이런 식입니다. 드디어 만나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자의 주인공 역시 저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없는 형편에 반지와 목걸이를 준비했는데, 다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목걸이는 가져가고 반지는 부담스럽다며 다시 제게 돌려줬습니다. 자기는 이미 B의 친구이지 않냐며 저를 찼습니다. 앞선 ⑨에서 말한 그 B 맞습니다.

이후 저는 폐인처럼 지냈습니다. 괴로움에 날을 새며 게임도 많이 했습니다. 좋은 날씨는 매번 원망스러웠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해 가을 그 친구는 제게 할 말이 있다며 저를 노량진 어느 카페에 불렀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회기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가는 그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습니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는 마음을 여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른 이야기일 것입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그곳에 갔는데 하는 이야기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이었습니다. 많이 허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듬해 그 친구는 자기가 잘못한 게 있다며, 우리 학교에 놀러 오면서 선물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때에도 그 친구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바보였습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저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슨 100일을 기다려가며 고백을 합니까. 100부터 줄어드는 숫자는 영향을 안 준답니까. 그냥 빨리 고백하고, 미팅 때 신나게 놀 걸 그랬습니다.


⑪ 이기적이었어도 됐을 나이


대학교 2학년 때에도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고민을 망설였습니다. 그해 9월에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은 사귀어준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미리 고민하고 걱정했습니다.


사귀어준다고 했을 때도 문제였습니다. 사법시험 합격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기다려줬으니 책임져야 하나? 라는 생각도 많았습니다.


결국, 생각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끔은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기적이었어도 됐을 나이였습니다.


⑫ 경영대 친구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알게 된 경영대 친구, 대학교 2학년 때 상암월드컵경기장을 같이 가기도 했었네요.

뭔가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여전히 서툴렀습니다. 같이 사진 찍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병역의무를 위해, 그 친구는 호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호주 유학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대체 왜?


호주에서 돌아온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갔고, 같이 식사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노래방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저도 좋았습니다.


노래방에서 같이 노는데, 그 친구에게 교수님 부음(訃音) 소식이 왔고, 미안하다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졌습니다.


속이 상한 저는 실망한 채로 광주에 내려왔고, 제 표정을 보신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냐며 추궁했던 적도 있네요.


그런 표정을 들키다니, 여전히 아마추어 같습니다. 그리고, 역시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⑬ 아이비 닮은 그녀


이후에는 아이비 닮은 친구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공익근무 중이었고, 친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후에는, 그 친구가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복학했을 때였을 것입니다.

속은 쓰리지만, 어쩌겠습니까. 공부나 해야죠.


⑭ 외로운 아이


복학하고 교회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같은 또래의 친구에게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라고 교회를 간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축구장 데이트도 하고 싶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그 친구는 얼마 후 제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갑철아,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나 ○○이 좋아해.”


⑮ 교회 누나


이후 교회 누나를 좋아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감정 숨기느라 참 힘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워낙 친해서 ‘남매’라고도 했습니다. 그 누나를 위해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제 기도 덕분인지, 그 누나는 임용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저는 사시 보고 고백 타이밍을 잡고자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만나 주려고 했거든요.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무작정 만나자고 했고, 제 친구가 있는 자리에서 고백했습니다.


“야, 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있는 자리에서, 꽃이라도 좀 사 오지.”


뭐,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백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으니까요. 그 친구에게도 참 무례했고, 그 누나는 황당했을 것 같습니다. 그 누나는, 며칠 뒤에 싸이월드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있고, 그는 나를 알지 못하고 있고


대충, 이런 글 같습니다. 저는 짜증이 났고 교회에서 만난 누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누나, 그렇게 쓰면 그 사람이 알아준대? 남자는 그런 표현 안 좋아해. 누나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⑯ 시험 합격한다고 달라지냐


사법시험 합격하면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소개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제 딴에는 잘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잘 안 됐습니다. 그 친구는 전 남자친구에게 돌아갔습니다.


정리


돌이켜보면, 사람을 좋아했던 건지, 연애를 하고 싶었던 건지, 둘 다였는지, 외로웠던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저는 늘 사랑에 실패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일부러 뺐습니다. 저를 좋아해 준 사람의 이야기를 빼더라도, 이쯤 되면 저는 거의 ‘축구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항상 차이기만 했으니까요.


실망도 많이 하고, 자신감을 잃는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늘 이 생각은 놓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현됐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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