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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Aug 12. 2024

학폭법이 만능은 아니에요

학교폭력과 안전사고

여기 평소 친한 A와 B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친했고, 중학생이 된 지금도 수업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붙어 다니며 이야기하고 장난을 친다. 가끔 욕을 섞어 농담도 하고 밤늦게까지 같이 게임을 하며 메시지도 주고받는 등, 누가 봐도 '친한 친구'라고 할 만한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 평소처럼 A와 B가 복도에서 만나 서로 목을 끌어안고 헤드락을 거는 시늉을 하며 놀다가 A가 미끄러지면서 B의 목을 평소보다 세게 안았다. B는 아프다며 A에게 사과하라고 말했지만, A는 맨날 하고 노는 건데 뭘 사과까지 하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한다. 


마음이 상한 B가 집에서 어머니에게 투덜대며 이 일을 이야기했다. B는 A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어머니의 반응이 심상찮다. 크게 화를 내며 학교에 ‘우리 아들이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학교폭력 신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A의 행위는 학교폭력일까?


학교폭력예방법에서는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ㆍ유인, 명예훼손ㆍ모욕, 공갈, 강요ㆍ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ㆍ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 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행위자가 누구이든 상관없고, 학교 내에서 행위하든 외에서 행위하든 상관없다. 상해, 폭행 등 행위 유형을 나열하고 있지만, 이 역시 예시일 뿐 나열되지 않은 행위여도 상관없다. 한 마디로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학생이 피해를 주장하는 모든 경우를 전부 학교폭력 사안으로 다루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폭력 사안인 경우와 아닌 경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답은 ‘괴롭힘’에 대한 ‘고의’ 여부다. 나의 행동이 다른 학생에 대한 괴롭힘, 즉 피해를 주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 행동을 할 때 ‘고의가 있다', '학교폭력이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고의'로 다른 학생을 치고 지나갔다면 신체폭력을 행사한 것으로서 학교폭력에 해당한다.  반면 '고의'가 없는 행위,  예를 들어 많은 학생들이 오가는 좁은 복도에서 마주 오는 다른 학생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부딪혔다면, 해당 학생을 괴롭히려는 행위가 아닌 '실수'에 의한 '사고'이기 때문에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 


다시 A와 B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A는 B와 친했고, 이전에도 서로 목을 끌어안고 헤드락을 거는 시늉을 자주 했으며, 문제가 된 날에도 비슷한 행위를 하며 놀았다. 그날따라 A가 B의 목을 세게 안은 것이 B에게 신체적 피해를 입히기 위해 일부러 한 것이라는 정황도 없다. 한마디로 A는 ‘B를 괴롭히려는 의도’, 즉 학교폭력의 고의가 없었다. 따라서 A의 행위는 실수로 B를 아프게 한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학교폭력으로 볼 수는 없다.


B의 어머니는 화가 날지도 모른다. 아무리 장난이라도 A가 B를 아프게 했다는 건 분명하기 때문에, A를 혼내주고 B가 병원에 다녀오느라 쓴 돈을 배상받고 싶을 수도 있다. 이때 ‘생활지도’라는 것이 등장한다. 교사가 학생의 잘못을 지도하여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적 조치. 여기에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놀다가 다친 경우 ‘학교안전공제회’를 통해 안전사고로 인한 치료비를 보상받을 수도 있다. 친구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지 않더라도 해결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예방법은 ‘이 법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서 국민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리고 법원은 ‘학교폭력 가해자를 양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학교폭력 해당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하고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판결을 계속하고 있다(대구지방법원 2022. 5. 25. 선고 2021구합24966 판결, 광주지방법원 2021. 5. 20. 선고 2020구합15277 판결 등).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돕기 위한 제도이지만, 만능은 아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학교폭력인 경우와 아닌 경우 모두 각각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보호자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도움과 지원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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