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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May 30. 2024

[학폭제도] 바보라고 놀리지 말아요

장난과 학교폭력의 차이

‘바보, 멍청이’라는 표현은 언제 쓰일까?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흔히 보이는 것은 친구, 형제자매 또는 연인 간에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놀릴 때 사용하는 모습이다. 시대에 따라 놀리는 표현도 조금씩 달라지지만, ‘바보, 멍청이’만큼은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사용되는 클래식한(?) 표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친구를 ‘바보 멍청이’라고 놀리는 것은 학교폭력일까?


여기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A가 있다. 반장이고, 공부도 운동도 잘한다. 반장으로서 친구들 공부를 도와주기도 하고, 소외되는 친구를 보면 먼저 다가가 다 같이 어울리게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같은 반 학생들은 모두 A를 좋아했고, 선생님도 친구 부모님들도 모두 A 같은 학생이 없다며 칭찬했다. A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체육시간, A의 반 학생들이 팀을 나누어 피구 경기를 했다. 이긴 팀은 반 대표로 체육대회에 나갈 수 있었기에 경기는 꽤나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A의 팀 선수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잘 버티던 A가 순간 날아오는 공을 보지 못하고 맞아 아웃되고 말았다. A는 놀라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한 마음으로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때 응원석에서 A의 팀을 응원하던 친구 B가 A에게 외쳤다.  


“이 바보 멍청아, 그것도 못 피해?”


A는 놀랐다. 언제나 타의 모범이 되는, 모두가 좋아하고 칭찬하는 A였다. 그런 A에게 ‘바보, 멍청이’라는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바보라니, 내가 멍청이라니...’


며칠 동안 힘들어하던 A는 결국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님께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에서였고, 특별히 B가 밉거나 원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반응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평소 바른 언어습관을 강조하고, A와 A의 동생에게 ‘바보, 멍청이’ 정도의 놀리는 표현도 절대 쓰지 못하게 했던 A의 부모님은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B를 ‘언어폭력’ 가해자로 학교폭력 신고하는 것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바보, 멍청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애정 어린 놀림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학교폭력 신고를 고민할 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법원의 입장은 어떨까? 서울행정법원은 2019. 1. 18. 선고 2018구합71656 판결에서 ‘‘바보, 멍청이’라는 표현은 친구들 간에 장난으로 한 표현일 수도 있고, 일시적인 다툼, 불화 등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1회에 한해 한 발언일 여지도 있다. 따라서 ‘바보, 멍청이’라는 발언을 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 발언 장소, 발언 횟수 등이 특정되지 않은 이상, 친구에게 위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모욕, 따돌림 및 이에 준하는 방법에 의한 학교폭력예방법상의 학교폭력을 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하고 있다. ‘바보, 멍청이’라는 표현 자체가 곧바로 학교폭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할 여지가 있고, 이는 발언 당시의 상황이나 발언 정도를 구체적으로 살펴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에서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가 ‘장난으로 한 행위라도 학교폭력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한 사이에서 서로 주고받는 가벼운 놀림은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지만, 일방적이거나 지속적, 반복적인 심한 놀림은 장난으로 평가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내가 하는 행동이 장난인지 아닌지 올바르게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하는 예쁜 태도라는 것도 함께 기억한다면, ‘나는 장난을 쳤을 뿐인데 학교폭력 신고를 당했다’는 억울한 하소연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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