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씨 Apr 22. 2024

10년후는 모르겠지만 재계약은 하고싶습니다

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의 첫 출근 이야기

신정 다음날인 2020년 1월, 교육지원청으로 첫 출근했다.

첫날답게 정장도 차려입고,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내 쪽으로 일제히 시선을 주었다.


오늘부터 출근하는 '학폭 변호사'라며 인사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한 뒤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꽤 넓은 책상, 새 컴퓨터, 미리 준비해 둔 책상 위 명패. 생각보다 좋은걸?


면접 때 받았던 인상처럼 따뜻한 느낌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섯 개쯤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학폭팀 소속 과장님도, 교육국장님도, 기관장인 교육장님까지도 모두 입을 모아 '훌륭하신 분이라고 들었다', '이렇게 좋은 분이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나를 대단한 인재처럼 여겨주고 반겨주셨다. 내가 그 정도의 능력자든 아니든, 이 정도로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라면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은 해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점심시간, 나를 포함한 서너 명의 전입자들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과장님은 이런저런 질문 끝에 나에게 '10년 후 목표가 뭐냐'라고 물으셨다.


관리자다운 스케일이 큰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다. 당시 나는 4년 차 변호사였고, 그동안의 생활은 그저 매일 주어진 일을 숙제처럼 해내기 바빴기에 10년은커녕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미래의 일도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질문보다 조금은 가볍게 답했다.


“10년 뒤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1년 뒤에 재계약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넘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답변이었을 뿐, 1년 뒤에도 이곳에서 계속 일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래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앞일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과장님은 이 답변이 꽤 맘에 드신 모양이었는지, 이후에도 나를 만날 때마다 '변호사님이 그때 재계약이 목표라고 했었던 것 기억나냐'며 첫날의 다짐 아닌 다짐을 계속 상기시켜 주셨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후 나는 재계약을 4번이나 더 한, 5년 차 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무게감 있는 질문을 던지셨던 과장님은 시간이 흘러 교육장님이 되신 지금도 여전히 ‘그때 재계약이 목표라고 하지 않았었냐’며 반겨주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