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비밀일 수 없다
늦은 밤 공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5명이 모여 술을 마시며 놀다가 지나가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 A·B를 불렀는데, A·B가 무시하고 그냥 가려고 해서 기분이 상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해학생들은 A·B의 온몸을 때리고 욕을 하고 돈과 물건을 빼앗은 후, '신고하면 끝까지 찾아내서 보복하겠다'라며 협박하고, '혹시 누가 왜 다쳤냐고 물어보면 둘이 맞짱 뜨다가 그랬다고 하라'며 다친 것에 대한 해명 시나리오를 써 주기까지 했다. 미성년자가 술김에 저질렀다고 치부하기에는 잔인한 행동이었다.
겁에 질린 A·B는 가해학생들이 시킨 대로 부모님과 학교에 ‘둘이 싸우다 다쳤다’고 말했지만, 평소 사이가 좋았고 싸움을 한 적도 없는 아이들이었기에 둘이 싸우다가 크게 다쳤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안심시키며 설득했고, 결국 공원에서 모르는 형들에게 맞고 돈을 뺏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A·B는 가해학생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한밤중 어두운 공원이었고, 모두 그날 처음 보는 사이였고, 지나가다 갑자기 불려가 맞고 협박당했기 때문에 정확한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하는 건 모두 근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모르는 형들’이라고만 말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학교폭력 사안을 접수한 학교는 난감했다. 크게 다쳐 입원까지 한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기적은 그때 일어났다. 가해학생들과 A·B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날 그 공원에 지나가던 다른 학생이 있었던 것이다. 술에 취한 가해학생들이 A·B를 괴롭히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이 학생은 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곧바로 동영상을 경찰에 가져가 신고하려고 했지만, 가해학생들이 A·B에게 '신고하면 보복하겠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무서워서 그대로 집으로 갔다. 하지만 다친 아이들이 걱정되어 한숨도 못 자고 다음 날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동영상을 확인한 뒤 가해학생들의 소속 고등학교에 연락하여 신원을 파악했고, A·B의 학교에도 알렸다. 이렇게 가해학생들의 신원이 모두 밝혀졌다.
가해학생들은 처음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때 집에 있었고 공원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폭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보여줘도 이건 내가 아니라며 잡아떼는 아이도 있었지만, 다른 가해학생들의 진술로 너무 쉽게 거짓임이 드러났다. 가해학생들 사이에 의리는 없었다. 이번에는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걔가 시켜서 그런 거라며 떠넘기기까지 했다. 가해학생들은 심각한 폭력을 저지르고는 반성도 화해도 하지 않았고, 모두 중한 처분을 받았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진실이 무엇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생각보다 강하고, 비밀은 영원하지 않다는 쪽이 학교폭력 업무를 할수록 더 믿을 만한 명제라는 생각이 든다.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한 잘못은 바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