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로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역량강화 연수나 사례해설 등 심의위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법이나 절차보다도 훨씬 더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겸손’이다.
겸손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다. 나는 이것이 심의위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자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유·무형적 불이익도 커졌다. 교육부가 2023년 4월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 따르면, 모든 대학은 2026학년도부터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입시에 필수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에 따라 2024년 5월 전국 10개 교대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이력이 있는 학생의 지원 자격을 제한하거나 부적격 처리하여 교사가 되는 길을 제한하는 입시요강을 발표하기도 했다.
학교폭력 사안이 더욱 엄중해진 만큼, 심의위원의 책임도 무거워졌다. 학폭위의 결정이 해당 학생의 장래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심의위원님들은 이 점을 잘 알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책임감을 발휘했다. 자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사실관계 파악에 꼭 필요한 질문을 하되 학생이나 보호자가 상처받지 않도록 말투와 태도를 주의하고, 위원들 간 협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신중히 결정한다. 학생과 학부모, 다른 위원들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책임감이 다소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되는 경우도 있다. 위원이라는 지위를 내세우며 학생과 보호자에게 조언을 가장한 비난을 하여 상처를 주고, 화려한 경력을 내세워 자기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하며다른 위원의 의견을 무시하기도 한다. 자기를 내세우고 남을 존중하지 않는, 겸손하지 않은 태도다. 상처받은 학생과 보호자는 학폭위의 결정을 믿지 못하고, 제대로 된 협의 없이 내려진 결정은 필요 적절하지 않다. 학폭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심의위원들에게 가장 먼저 ‘겸손’을 권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학교폭력도 심의위원 한 명이 아닌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의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학생을, 학부모를, 다른 위원들을 존중하는 자세야말로 좋은 심의의 시작이고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