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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May 13. 2024

오가는 아이들이 편안하도록

학폭위가 어렵지만은 않은 곳으로 기억되기 위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어떤 이미지일까?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당사자인 초, 중, 고 학생들에게는 조금은 ‘무서운 곳'으로 인식될 것이다.


학교폭력법 적용대상은 초등학교 1학년인 만 6, 7세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다.


그 중 가장 어린 6살짜리 아이가 자기의 잘못이든 아니든 교육청이라는 학교보다 더 크고 낯선 곳에 와서 무서운(?) 아줌마, 아저씨들의 질문을 받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사실 어른이라도 어렵고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제로 어떤 학생들은 진술 도중 울기도 하고, 긴장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 부모님이 대답을 대신하기도 한다. 아예 부모님만 출석하여 진술하는 경우도 있다.


학폭위가 어려운 자리인 것은 맞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어려운 자리여야’ 한다. 누군가를 괴롭히면 이렇게 길고 어려운 절차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거나 어려워할 필요는 없다. 학폭위는 결국 아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마련된 곳이고, 아이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폭위는 어렵지만 어렵지만은 않은 곳이어야 한다. 무겁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갈 수 있는 곳. 다녀온 후에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던 곳’으로 기억되기 위해,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늘 고민한다.


시작은 친절한 안내다. 처음 와보는 교육청에서 학생과 학부모님이 헤매지 않도록 업무 담당자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대기실로 안내한다.


학생들 간 대기시간과 층도 다르게 배정된다. 상대 학생을 마주칠까 봐 걱정하는 학생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대기실에 들어서면 예쁜 그림과 따뜻한 문구가 보인다. 큰 창문이 있어 빛이 잘 들고 환기도 잘 된다.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렸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심의실 안에는 물과 티슈가 비치되어 있다. 긴장한 학생에게는 물을 권하고, 우는 학생에게는 티슈를 건네며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진술을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에게는 잘 가라는 인사를 한다. 학생들도 대부분 꾸벅 인사하고 돌아간다. 함께 오신 부모님께도 '어려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 수고 많으셨다'며 격려한다.


여기 오는 분들은 다 상처 입어서 오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서까지 상처를 더하지 않아야 합니다. 헤매지 않게 잘 안내하고, 친절히 대해 주세요.


교육청 심의위원회 출범 당시 교육장님이 업무담당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로부터 5년 차 학교폭력 변호사가 된 지금까지도, 학폭위에 오는 학생과 학부모님을 볼 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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