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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씨 Apr 19. 2024

[학폭변호사] 합격하고 안 오시면 곤란합니다

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 지원과 면접기

2019년 12월, 교육청 학교폭력 변호사 면접을 봤다.  

서울을 떠나 남편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한 지 3개월째였다.


당시 교육계는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으로 조금은 분주한 시기였다. 학교폭력 관련 사안을 의결하는 기관, 일명 ‘학폭위’가 2020년 3월 1일 자로 학교(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교육지원청(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으로 이관될 예정이었다. 학교의 업무를 덜어주어 교육 기능을 회복하고, 상급 기관에서의 심의로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 교육청에서 학폭 절차 운영을 자문해 줄 전문가, ‘학폭 변호사’가 필요해진 이유였다.


법률사무소처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도, 변호사로서 크고 다양한 사건을 경험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제도의 첫 시작과 정착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집과 가까워 서울과 같은 출퇴근 부담이 전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지원서를 냈다.


면접 당일, 안내받은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며 마음을 다잡은 뒤 교육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현관에서 마주친 분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면접 관련된 분도, 아는 분도 아니었다. 누군가와 헷갈렸다 보다 생각하면서도 인사하신 분이 민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웃으며 인사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먼저 타 계시던 분이 내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또 반갑게 인사했다. 또 누구랑 헷갈렸나? 어쨌든 또 같이 인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렀다. 안에서 나오던 분이 또 세상 밝게 인사했다. 뭐지? 나 유명해졌나?


아니었다. 그곳은 누구를 어디서 마주치든 반갑게 인사하는 분위기였다. 면접장소로 안내해 주시는 분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낯선 곳에서 느낄 법한 어색함과 불편함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면접관은 3명이었다. 한 명은 법률 지식을, 한 명은 공공기관에서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다. 오면서 받은 '인사 세례' 덕분일까? 평소와 달리 별로 긴장하지 않고 차분히 잘 대답했다.


이제 곧 끝나겠구나 싶어질 때쯤, 가운데 앉은 면접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런 질문드리기 좀 뭐 하지만... 꼭 오실 수 있는 겁니까? 저희가 여러 번 면접을 진행했는데,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다른 데 가겠다고 안 오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벌써 네 번째입니다... 합격하고 안 오시면 곤란합니다.


누군가는 면접을 소개팅과 비슷하다고 한다. 상대가 내 마음에 들어도, 내가 상대방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함께할 수 없다. 회사와 면접자 양쪽이 그렇다. 이곳은 벌써 3명에게 거절당한 상처(?)를 가진 곳이었다. 서울이 아닌 근무지, 많지 않은 보수, 제한된 업무. 먼저 합격한 변호사님들이 다른 곳을 선택한 이유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남편과 함께 이 지역에 정착할 것이고, 보수보다는 특정한 업무를 경험하며 전문성을 쌓고 싶었다. 교육계는 다른 분야보다 법률 전문가의 수가 많지 않았다. 이것은 기회였다.


합격하면 오래 다닐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하자, 면접관은 반신반의하는 듯했다.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도 ‘꼭 와 달라’는 말을 들었다. 누구든 만나면 인사해 주는 곳, 사람이 귀해 와 주기를 바라는 곳. 어쩌면 변호사 생활 중 가장 오래 일할 곳이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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